[반지하 수(水)난시대 上] 장마철 '물폭탄' 예고에도 침수 우려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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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만 반지하에 22만여가구, 40만여명 거주
물막이판 미설치 반지하만 40%‧대심도 빗물 터널 착공도 지연
주거상향 이주지원‧특정바우처 이행률 바닥···"반지하 소멸"도 미흡
"사실상 실패한 정책", "위험 해소 위한 지원‧대책 더 적극 추진해야"

2022년 8월, 유례없는 집중호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가구에서 발달 장애인과 그 가족이 고립돼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고 이후 정부와 지자체 등은 너도나도 앞장서 반지하 침수 피해 최소화, '반지하 퇴출'을 위한 대책을 잇달아 쏟아 냈다.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지금, 20만 호가 넘는 서울 반지하 주택은 침수 피해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서울파이낸스는 정부, 지자체의 반지하 대책과 반지하 가구의 현황을 상·하 두차례에 걸쳐 긴급 점검해 본다./ 편집자 주

지난 25일 방문한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일대 반지하 밀집 지역 (사진=오세정 기자)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28일까지 제주도에 최대 150㎜ 이상 물폭탄이 예고된 가운데 이번주 주말부턴 남부지방을 거친 장맛비가 중부지방에도 쏟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 여름 평년보다 더 큰 폭우가 예상되지만 2년 전 최악의 침수 참사가 발생했던 서울시 내 20만 반지하 거주민 안전 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모습이다.

물막이판 설치 등 치수 대책은 물론, 취약계층 거주환경 개선도 미흡한 실정으로, 시 안팎에선 정책 실패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해마다 반복되는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반지하 주택에 대한 전수조사와 함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과 이행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시에 따르면 당초 침수 우려 주택으로 분류된 2만4842가구 중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한 가구는 현재 1만5217가구다. 설치율은 61.3%로, 나머지 38.7%에 해당하는 9625가구에는 아직 침수방지시설이 설치되지 않았다. 현재 침수 우려 주택 대다수는 반지하 주택으로 수해에 취약한 거주 형태임에도 사실상 10곳 중 4곳 꼴로 침수방지시설을 갖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집주인 설치 반대 △거주자 부재 △구조적 설치가 불필요한 지형 등으로 미설치 됐다는 게 시의 입장이다. 특히 일부 집주인들은 물막이판을 설치할 경우 '침수 피해 가능성이 큰 가구'로 비춰지며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단 이유로 설치를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지하에 사는 세입자는 시설 설치를 원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지난 25일 방문한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일대 반지하 주택에 물막이판 등 침수방지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모습. (사진=오세정 기자)

지대가 낮아 침수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강남역과 광화문, 도림천 일대에 설치하겠다고 밝힌 '대심도 빗물 배수 시설'은 현재 삽질도 시작을 못한 상태다. 대심도 빗물 배수시설은 지하 40~50m 아래에 큰 터널을 만들어 많은 비가 내릴 경우 빗물을 보관해 하천으로 방류하는 시설이다.

시는 이르면 올해 말 강남역과 광화문, 도림천에 대심도 빗물 배수시설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계획보다 착공이 늦어지면서 완공 시점도 애초 2027년 말에서 2028년 말로 미뤄졌다. 시는 지난해 12월과 1월 사업 공고를 냈지만 비용 문제로 공사를 맡겠다는 건설사가 나오지 않으며 유찰됐다. 두 차례 유찰 끝에 총사업비는 1조3689억원으로 재조정됐고, 지난 3월 지역별로 건설사 한 곳씩 사업 참가 의사를 밝혔다.

반지하 신축 금지를 포함해 침수 우려 주택 매입 등을 통해 모든 지하‧반지하 주택을 점진적으로 없애겠다고 내놓은 '반지하 소멸' 계획도 부진하긴 마찬가지다. 지난달 11일 기준 반지하 주택을 포함한 침수 우려 주택 매입은 72곳뿐이다. 지난해 1000가구를 목표로 해 72곳을 매입했지만 올해 목표한 3450곳 중 매입이 완료된 곳은 아직 없어 달성률은 1.6%에 머물러 있다.

'반지하 이주정책' 성적도 초라했다. 지난달까지 침수우려가구 중 5527가구만 '주거상향 이주지원'을 지상층 이주를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상층 이주 반지하 주택 거주자에게 월세 명목으로 매달 20만원씩 최장 6년간 지원하는 '반지하 특정바우처'의 경우 지금까지 970여가구 지원에 그쳤다. 오랜 기간 거주하거나 직장과 가까운 지역을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거처를 옮기기 어려운 데다 보증금이나 거주비를 지원 받더라도 저렴한 반지하를 벗어나기에 추가 부담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게 실거주자들의 의견이다.

지난 25일 방문한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일대 반지하 주택에 물막이판 등 침수방지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모습. (사진=오세정 기자)

반지하 거주 가구 대비 이들이 이주할 수 있는 매입임대주택 재고도 부족한 상황이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서울 매입임대주택 재고는 2021년 3만3295가구에서 2022년에 3만166가구로 오히려 감소했다.

이달 진행된 시 반지하 침수대책 점검 및 강화방안 마련 토론회에서도 이 같은 지적이 쏟아졌다. 신상영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까지 대규모 집중호우와 반지하주택 침수피해가 발생하면 대책이 발표되곤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 정책적인 관심사에서 멀어지고 정책 추진이 꾸준히 이뤄지지 못했다"며 "반복적으로 침수피해를 입는 반지하주택에 대해 시민, 특히 저소득 서민의 생명 및 신체 보호와 주거복지 확보 관점에서 위험 해소를 위한 지원과 대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서울 반지하에 22만여가구, 40만여명이 거주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반지하 문제를 제대로 논의한 적 없고 시에서는 정비사업만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울 자치구별 반지하 거주 가구에 비해 매입임대주택 재고가 부족한 불일치가 지속되고 있으며, 전수조사를 통해 집계한 침수방지시설 필요 가구 수 역시 실제 필요 가구 수와 설치 비율 등이 권역별 격차가 큰 상황"이라며 "특정바우처 대상 가구 수는 당초 목표인 1만 가구의 1%에도 못 미치는 등 사실상 실패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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