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인허가권자 갑질?···정비사업장 기부채납 갈등 커진다
[현장+] 인허가권자 갑질?···정비사업장 기부채납 갈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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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재건축하려면 연면적의 최소 10%에서 20% 수준 기부채납 필요"
서울시, 비선호 시설·3100억원 규모 보행교 설치·임대아파트 공급 등 요구
원활한 정비사업을 가로막는 주요 걸림돌로 부각···정비사업 수익성 악화
"기부채납 대가 혜택 크지 않아···적정 기준 정하고 상황에도 유연 대처해야"
여의도 시범아파트에 재건축 조건으로 무리한 기부채납을 요구하는 서울시를 비판하는 플랜카드가 걸려있다. (사진=박소다 기자)
여의도 시범아파트에 재건축 조건으로 무리한 기부채납을 요구하는 서울시를 비판하는 플랜카드가 걸려있다. (사진=박소다 기자)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정부가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재건축·재개발 사업 활성화 정책을 낸 가운데, 실제 정비사업장 곳곳에선 기부채납을 둘러싼 지방자치단체와 주민 간 갈등이 속출하고 있다. 주민들은 지자체가 용적률 상향 혜택 등의 조건으로 요구하는 기부채납 수준이 너무 과하다며 정비 사업 지체를 우려하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기부채납은 국토계획법에 의거한 것으로 개발사업 인·허가에 따른 '부관'(附款·일종의 조건) 형태로 지자체가 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상 도로나 공원, 학교 등 기반시설과 사업 부지 일부, 또는 건축물, 현금 등이 기부채납 목록에 오른다. 이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사업 시행자들은 용적률 상향과 동 간 거리 완화 등의 혜택을 받아 사업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서울시는 '신속통합기획'을 앞세워 '공공성'과 '사업성'의 균형을 이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신통기획은 사업성을 높일 수 있도록 시가 지원하는 대신 시가 요구하는 공공목적의 시설물 설치(기부채납)이 필수적이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시범아파트'는 기부채납 문제로 재건축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시가 신통기획을 통해 이 단지를 준주거지역으로 종 상향(용적률 400%)하고, 최고 층수를 65층으로 허가하는 혜택을 주는 대신 노인 주간보호시설 설치를 요구하면서 아파트 소유주들과 갈등이 시작됐다.

시는 공익성을 위해 해당 시설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비선호되는 시설이 단지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이곳 사업 시행사가 자체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소유주 42%(333명)은 '노인 데이케어센터 계획이 전체 삭제될 때까지 사업 전면 중단'을 선택했다. 결국 시행사가 데이케어센터를 문화시설로 변경하는 안을 시에 다시 제출했지만, 승인되지 않아 시행사는 다시 소유주를 설득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기자가 만난 이곳 한 주민은 "주민들이 싫어하는 시설을 반강제적으로 설치하라고 하니 일부 주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하는 것으로 안다"며 "정부가 바뀌면서 재건축만 기다려왔는데 주민 반대로 사업 속도가 나지 않아서 아쉽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 관계자는 "공공기여(기부채납)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시설을 설치하기 위한 제도"라며 "노인 관련 시설이 비선호 시설로 여겨져 주민 반대가 있더라도 고령화 시대에 맞춰 앞으로도 계속 추진·확대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기부채납으로 갈등을 빚는 정비 사업장은 이 외에도 다수다. 강남구 압구정3구역은 설치 비용만 3100억원에 달하는 공공보행교 설치가 기부채납으로 요구됐다. 이곳 가구 수가 3946가구인점을 고려하면 가구당 약 8000만원 수준의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소유주 625명은 신통기획 재건축 방식을 반대하는 서명을 서울시와 강남구에 제출했다.

개포현대2차 재건축도 기부채납으로 노인복지시설이 요구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서초구 신반포7차는 기부채납 비율을 상향 조정해달라는 시의 요구를 거부하고 현재 새로운 재건축 계획안 마련에 나선 상태다. 신통기획 1호였던 '오금현대아파트'도 임대아파트 비율 20%요구에 사업을 철회하기도 했다. '스카이브릿지' 설치를 두고 시가 해당 시설을 공공에 개방한다고 제동을 걸면서 설치를 포기한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부채납의 방식과 규모 수준이 빠른 정비사업을 가로막는 주요 변수로 부각되고 있어서다. 안 그래도 공사비 상승 문제로 정비사업은 현재 수익성이 많이 악화된 상황이다.

또 기부채납의 기준이 법제화되지 않아 주먹구구식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가 2017년 주택법에 근거한 '주택사업 관련 기반시설 기부채납 운영기준'을 마련하고 '주택건설사업의 사업계획을 수립할 경우 기반시설 기부채납 부담 수준은 해당 사업부지 면적의 8% 범위 내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정비사업은 도시정비법을 따르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다.

현재 보편화된 기부채납 비율을 보면 서울시의 경우 용도지역 종 상향 시 기부채납 비율은 1단계마다 연면적 '10% 이상'으로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3종일반주거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상향하려면 기본 10% 기부채납에 용적률 상한까지 완화하려면 또 10%가 추가돼 많게는 연면적 20% 이상이 기부채납 면적이 된다.

정부 역시 과도한 기부채납 방지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4일 '주택건설사업 인허가 관련 지자체 협의회'에 이어 지난 14일에는 '서울시 기초지자체 인허가 협의회'를 연달아 개최해 인허가를 지연시키는 과도한 기부채납에 주의를 당부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실장은 "최근 공사비 상승 문제에 직면하면서 과거 수준대로 기부채납을 요구해선 사업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특히 서울시는 정비사업에 굉장히 많은 공익성을 요구하고 있어 갈등이 더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도 "현재 기부채납 대가로 주는 용적률을 일부 올려주고 있으나, 비교해 보면 혜택 수준이 낮아 균형이 맞지 않는다"며 "수익자부담 원칙이 적용될 수 있도록 법문화된 기준을 만들고, 현장 상황을 유연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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