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나홀로 겨울'···"SK하이닉스에도 추월당할 듯"
기존 경영진 향한 불신···"전문경영인 체계 전환해야"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삼성전자의 위기설이 확대되면서 컨트롤타워 재건과 지배구조 개선 여론이 힘을 받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지배구조 개선이 위기 돌파에 긍정적으로 작용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15일 '2023 연간보고서' 발간사에서 "경영판단의 선택과 집중을 위한 컨트롤타워의 재건, 조직 내 원활한 소통에 방해가 되는 장막의 제거, 최고경영자의 등기임원 복귀 등 책임경영 실천을 위한 혁신적인 지배구조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그동안 컨트롤타워 재건에 대해 꾸준히 주장해왔다. 올해 초에는 "작은 돛단배에는 컨트롤타워가 필요없지만 삼성은 어마어마하게 큰 항공모함"이라며 "컨트롤타워가 없으면 효율성과 통일성 측면에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주장은 그동안 삼성의 안팎의 여러 사정 등 영향으로 구체적으로 진행되지 않았으나, 대내외 위기 여론이 커지는 만큼 컨트롤타워 재건 주장에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 빠른 의사결정과 책임경영을 위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회복세에 접어들었음에도 3분기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매출 79조원, 영업이익 9조1000억원의 잠정 실적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증권가 전망치인 10조7000억원을 밑도는 수준이다. 매출은 전분기 대비 6.66%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12.84% 감소했다. 스마트폰은 6세대 갤럭시 폴더블 출시 영향으로 선방했으나 반도체 부문에서 부진을 거뒀다.
특히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 DS부문의 실적이 SK하이닉스에 추월당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가 3분기 6조7559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 DS부문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6조4600억원이다.
4분기에도 삼성전자의 실적이 어두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스마트폰 비수기에다 HBM 성과가 아직 나타나지 않으면서 영업이익이 8조원대에 그칠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주력이었떤 범용 D램 시장에서도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저가 공세가 이어지면서 위기설은 확대되고 있다.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컨트롤타워 재건과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준감위 주장이지만, 일각에서는 부정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첫 파업을 단행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사업 부진과 파업 등에 대한 책임을 이재용 회장과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부회장에게 돌리고 있다.
전삼노는 올해 초 노사위원회의 임금협상 과정에서 노조 측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반발하다 지난 7월 파업을 단행했다. 당시 노조 측은 임금 6.5% 인상과 유급휴가 1일 추가, 성과급 산정 기준 공개 등을 요구했다. 전삼노는 파업 한달 뒤인 8월 초, 이재용 회장의 자택 앞에서 집회를 열고 총파업 사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설 것을 촉구했다.
또 정현호 부회장을 향해서는 '노사 협상을 결렬 시킨 장본인'으로 정의내리고 노조와 대화에 임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전삼노 측에 따르면 지난 5월 노사협상 당시 사측과 휴일 문제까지 거의 타결하고 찬분투표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사측 협상대표가 "서초에서 반려했다"는 말과 함께 협상이 결렬됐다. 전삼노 측은 사측이 말한 '서초'가 정 부회장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정 부회장은 이재용 회장의 최측은으로 삼성이 컨트롤타워를 재건한다면 그 수장을 맡을 것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이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 뒤쳐진 배경으로 정 부회장을 지목하는 만큼 대내외에서 우려가 큰 인물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만약 삼성이 컨트롤타워 재건에 돌입한다면 새로운 인물을 물색해야 할 수도 있다.
한편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이 컨트롤타워 재건과 이재용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를 추진하는 대신 보다 근원적인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기업거버넌스포럼은 15일 '삼성전자 미래를 위한 3가지 제안' 논평을 통해 △선진국형 전문경영인 체제와 △이사회 개편 및 독립성 보장 △임직원 보상체계 개편 등을 건의했다. 포럼의 이번 제안은 삼성전자를 겨냥하고 있지만, 삼성전자의 개혁이 관계사에도 영향을 주는 만큼 그룹 전체를 겨냥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포럼은 "(삼성전자는) 지배주주가 없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선진국형 전문경영인 경영체제로 전환을 준비할 시점"이라며 "먼저 사장급 이상 최고위중역 25명 중 36% 차지하는 비대한 관리 조직 도려내야 한다. 오로지 기술에 전념하고 엔지니어, 디자이너 등 기술인력을 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사회를 전문가 위주로 업그레이드하고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며 "사내이사 축소하고 IT, 전략 및 거버넌스 리더 등 외국인 중심으로 이사회 재구성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TSMC 같이 미국에 주식 상장해 자본시장에서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전했다.
또 보상체계를 개편해 실리콘밸리에서 보편화된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같은 주식보상제도를 즉시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SU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사 주식을 주는 장기 성과 보상제도로 국내에서는 한화그룹이 대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