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대공습
환율 대공습
  • 홍승희
  • 승인 2004.04.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의 달러가 동북아 3국을 강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그동안의 시장개입만으로도 이미 쓸 수 있는 내력을 거의 소진한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인 공습이 시작됐으나 이를 피할 대피소가 없는 꼴이 된 것이다.

지난 주말 원/달러 환율은 당국의 힘겨운 방어 덕에 달러당 1천140원이 무너지는 것은 일단 막았으나 그게 한계로 보인다. 원화 환율이 엔/달러 환율에 연동돼 움직이는 상황에서 엔화가 다시 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마땅한 방어대책을 못찾고 있는 정부는 일본의 대처만을 기대하는 듯한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환율대책을 눈여겨보는 것은 당연하지만 일본과 한국의 경제체질에 차이가 크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IMF 위기를 극복했다지만 아직 체력이 회복되려면 멀었기 때문이다.

수출호조로 엄청난 경상수지 흑자를 보이는 일본 정부가 독자적으로 외환시장 개입을 지속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차츰 시장 개입을 줄여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5, 6일 양일간 싱가포르에서 한·중·일 3국의 재무차관들이 만나지만 과연 이 자리에서 3국이 미국 달러의 동북아 강습에 공조대응할 묘책이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각개약진은 각개격파의 위험이 큰 만큼 3국의 협력이 매우 바람직하지만 애당초 환율 때문에 모이는 자리도 아니고 또 그동안 3국이 대달러 방어를 위한 실질적인 협력에 성공한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실상 동북아 3국을 한묶음으로 보기에는 서로의 경제적 위상 차이가 너무 크다. 게다가 역사적 상처가 회복되지 못한 3국의 정서적 장애를 무시하더라도 일본은 스스로 脫亞論을 외치며 G8의 일원으로서 아시아 국가들과의 대등한 관계 설정을 기피해왔다. 공조의 틀조차 진지하게 논의되지 못한 3국이 무릎을 맞댄다 한들 어차피 크게 성과를 기대할 바는 아닌 것이다.

이제 밖에서 기대할 바가 없다면 내부적인 대책마련에 더 힘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수출경기 호조와 경상수지 흑자라는 외양이 일본과 유사하면서도 아직 내수시장이 전혀 회복되지 못하고 높은 실업률에 허덕이고 있는 한국은 여전히 정부의 시장개입이 필요하다. 따라서 일본과는 다른 대책논리를 개발해야만 한다. 그리고 엔화 연동의 정도를 조절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미 회복이 시작된 일본 경제는 그동안 침체국면 속에 오체투지하던 눈높이로 볼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환율시장 개입의 당위를 논리적으로 펴나가기 위해서는 내부적인 장애부터 제거할 필요가 있다.

무술이나 격투기 훈련을 받으려면 먼저 낙법부터 배운다고 한다. 거침없는 공격이 가능하려면 자신이 공격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할 것이고 그러자면 설사 공격을 당하더라도 확실한 방어대책이 서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낙법보다 적극적인 방어대책으로는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회피동작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정책은 낙법도, 회피동작도 매우 미숙해 보인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전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All or Nothing’의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해 있고 냉정해야 할 경제정책에서도 종종 그런 사고의 편린들이 나타나곤 한다. 그러나 적어도 세계를 상대해서는 그런 발상이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행동밖에 내놓을 것이 없다. 섬세한 기척 읽어내기와 기민한 회피동작이야말로 세계시장에서 살아남는 가장 긴요한 대책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아직 낙법에 미숙하다는 한 증거는 국내용 통계와 대외용 통계가 다르다는 우리의 믿음이다. 실제로 국제기준과는 다른 국내용 통계가 적지 않고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노동 관련 통계와 실업률 통계다. 우리의 실업률이 선진국 수준에 비하면 낮다는 주장들이 있지만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도 그런가. 그건 아니다.

임금 수준 또한 마찬가지다. 사회적 복지비용에서 현저히 차이나는 상황을 외면하고 단순히 개인당 지급비용만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런 저런 규격미달 통계부터 바로잡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의 형편을 앞세운 정부개입의 당위도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마 농산물 협상 등에서도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결과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야 진정한 글로벌시대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