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없는 운용사·투자자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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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그룹 판매사 계열사 '밀어주기' 여전
투자자 권리 제한 v s 그룹 시너지 필요

[서울파이낸스 전보규 기자] # 30대 중반인 김 씨는 직장 동료인 이 씨로부터 펀드 얘기를 들을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이 씨가 가입한 A운용사 펀드와 비슷한 운용전략을 갖고 있는 B운용사 펀드에 가입했지만 연초 이후 수익률이 A펀드의 절반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작년말 직장 동료가 가입 이후 꾸준히 성과를 내고 있다는 A운용사 펀드를 가입하기로 마음을 먹고 B은행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A펀드가 아닌 B운용사의 펀드를 가입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상담직원이 A펀드와 마찬가지로 업종대표주에 투자하는 B펀드를 권했기 때문이다. B은행 계열 자산운용사 상품인데다 본인이 가입을 하려고 마음먹었던 상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망설였지만 두 펀드가 비슷해 보였기 때문에 상담직원이 권유한 상품에 가입했다.

비슷한 상품이니 수익률에 큰 차이가 있겠느냐는 생각과 같은 값이면 금융그룹에 속한 대형사가 좀 더 운용을 잘할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 소형 자산운용사에 근무하고 있는 박 본부장은 요즘 '죽을 맛'이란 말이 입에 붙었다. 새로 만든 펀드가 약관심사까지 통과했지만 상품을 팔아줄 판매사가 없어 시장에 내놓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펀드가 안팔리는 때라고는 하지만 든든한 계열 판매사가 있었다면 이 정도까지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면 서럽까지 하다.

펀드 판매사들의 계열 자산운용사 '밀어주기'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금융투자협회 종합통계서비스에 따르면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의 설정액 중 한국투자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90.44%(7월 말 기준)에 달했다. 단순히 계산했을 때 한국투자밸류운용의 펀드 10개중 9개 이상을 한국투자증권이 팔아준 셈이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도 신한은행과 신한금융투자의 판매 비중을 합하면 74.68%나 됐고 하나UBS자산운용(71.72%)과 한화투신운용(70.62%)도 계열 판매사 판매 비중이 70%를 넘겼다. KB자산운용(67.83%),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66.78%), NH-CA자산운용(61.94%) 등도 60% 이상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금융그룹 계열의 판매사는 그룹 시너지를 위해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며 계열사 상품 판매 비중이 높다고 문제될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모 증권사 관계자는 "경쟁사와 비슷하거나 거의 똑같은 상품을 갖고 있을 경우 굳이 같은 계열 운용사 펀드를 추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면서 "계열사간 시너지를 위해서라도 같은 계열사의 상품을 좀 더 적극적으로 권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다른 판매사 관계자는 "투자자가 원하는 것과 전혀 다르거나 수익률면에서 큰 차이가 나는 상품을 권할 수는 없다"며 "수익성과 상품성 투자자의 니즈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 계열사 펀드를 적극 추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그룹시너지를 어느 정도 인정하더라도 정도가 지나치다고 지적한다.

국내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판매사들이 계열 자산운용사 상품 판매에 좀 더 신경을 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아직까지도 판매사들의 '내 식구 챙기기'가 지나치다"며 "계열 판매사가 없는 자산운용사들의 경우 꾸준히 좋은 수익률을 내는 상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펀드 규모를 키우는데 상당한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중 은행관계자는 "예전에 비해 상황이 좀 낫다"면서도 "계열사 상품을 판매해야 한다는 압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답변했다.

펀드 자금유입은 수익률과 함께 판매사의 영향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형 증권사 펀드 연구원은 "펀드는 수익률에 따라 자금 유출입이 이뤄지지만 판매사의 역할도 수익률과 비교해 뒤지지 않을 만큼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판매사의 계열사 몰아주기는 투자자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측면에서도 문제점이 지적된다.

국내 증권사 펀드 연구원은 "일반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정보와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담직원이 유도하는 방향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며 "계열 자산운용사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다보면 완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고 투자자는 정보를 왜곡된 상태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럴 경우 투자자가 누릴 수 있는 정보의 폭이 제약된다는 점에서 투자자의 선택권도 제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제로인에 따르면 연초 이후 국내 주식형펀드 중 가장 좋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펀드는 프랭클린템플턴자산운용의 'FT포커스 자(주식)Class C-F'이다. 수익률 상위 10위안에 이름을 올린 펀드 중 계열판매사 비중이 50% 이상인 운용사의 상품은 'KB밸류포커스자(주식)클래스A'와 '미래에셋맵스그린인덱스 자(주식)A' 등 두개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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