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발전된 사회로 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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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토가 매양 작다고만 여기다가도 이번 폭설과 같이 지역별 편차가 큰 자연재해를 당하고 나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구나 싶기도 하다. 충남 남부로부터 전라남북도, 제주도까지 국토의 1/3 정도가 몽땅 폭설로 엄청난 피해를 겪는데 비해 영동지방은 겨울가뭄에 시달린다는 뉴스를 보며 자연현상마저 공평하지 못한 듯해 더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제까지의 익숙한 기상분포도와 전혀 다른 기상상황에 당혹감도 느껴진다. 그러니 벌써 기상 이변 운운하는 소리들이 들린다. 기상청은 결코 기상이변이 아니라며 설명을 하고 있지만 대중적 감각으로는 분명 이변으로 느껴질 법하다.
평소 큰 눈에 익숙한 강원도 지역은 웬만큼 큰 눈이 내려도 30분 내지 한 시간이면 어지간한 복구가 이루어져 교통의 전면통제와 같은 극단적 조치가 취해지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데 그 지역에선 올 겨울 눈이 너무 안내려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평소 큰 눈을 보기 어렵고 따라서 폭설 대비도 변변찮았을 호남 남부와 제주도에는 엄청난 양의 눈이 내리며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 개통된 지 얼마 안 되는 호남고속도로는 이번 폭설에 완전히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피해 증가에 한몫을 했다. 20시간을 고속도로 상에 갇혀 기름도 떨어진 차안에서 떨며 밤을 새웠다는 도로 이용자들의 하소연에는 마땅히 위로할 말도 별로 없다.

이런 평소와 다른 재해 재난 자체는 인간으로서 어찌해볼 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큰 눈이 내릴 가능성이 희박한 지역에서 폭설 대비를 위해 많은 비용을 썼다면 그 자체로 사회적 비난이 일 터였으니 관계기관의 폭설 대비가 부족했다고 질타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자의 많은 재해 재난에는 또 꼬리표처럼 인재의 몫이 따라다닌다. 이번 호남고속도로의 경우 경사도가 큰 구간의 극히 짧은 거리로 인해 고속도로 전체가 서둘러 진입통제 됐다고 했다. 그 짧은 구간에 한해서 만이라도 최악의 상황에 대비했다면 전구간이 무력화되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평소의 적설량을 기준에 맞춰 요구되는 비닐하우스 규격이 이번 폭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줄줄이 주저앉았다고 했다. 극히 예외적으로 규격보다 훨씬 강도를 높여 비닐하우스를 설치했던 농가가 피해 없이 멀쩡한 모습도 TV 뉴스시간에 소개됐다.

그런 사례들을 보면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은 효율만을 생각하고 능률만을 숭배하다가 얼마든지 변화무쌍하게 다가올 수 있는 자연재해의 위력 앞에 무참하게 무릎 꿇은 모습으로 비친다. 자본주의의 능률지상주의가 많은 사회적 이점을 가져오기는 하지만 단 한번의 큰 재난 앞에서 그 모든 성과들이 일거에 사라질 수도 있음을 상기하게 만든다.

쓰나미로 시작돼 2005년 중 전세계를 휩쓴 그 많은 재해 재난 가운데 다수는 인재가 더해져 그 피해의 폭을 키웠다. 그리고 올해 막바지에 우리나라는 지역별로 뒤집어져 나타나는 겨울기상 상황에 당황하고 있다. 그 안에도 인재의 그림자는 어른거린다.

우리 사회는 하드웨어 구축에 있어서 전세계적 모범사례로 불릴만큼 적극적이고 또 선도적이다. 지상의 수많은 하이웨이, 공간의 하이웨이라 할 인터넷망 등이 모두 선진수준이다.

그러나 졸부들이 내용없이 화려한 저택에 호화가구로만 집을 꾸민다고 비웃는 우리들의 사회는 그 졸부들처럼 하드웨어 구축에만 열을 올렸을 뿐 그 하드웨어를 충분히 가동하고 활용할만한 소프트웨어를 갖추는 데는 아직 미흡하다. 또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그 갖추어진 자산을 충분히 활용하려는 열의도 부족하다.

전체적인 효율성을 중시하더라도 핵심적인 부분에 한해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대비한다면 전체가 완전 마비되는 사태는 피할 수 있다. 전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식의 획일주의적 사고가 최악의 경우를 당하면 얼마나 인간이 무력한가를 거듭 깨닫게 만들어준다.

우리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 불길한 생각만으로도 왠지 재앙이 닥쳐올 것 같은 미신적 습관 때문일 수도 있고 닥치면 해결하자는 게으름의 소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능력이야말로 발전된 사회의 참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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