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개·돼지 민중론 유감
[홍승희 칼럼] 개·돼지 민중론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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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최근 한국사회를 발칵 뒤집은 고위 공직자 한사람의 놀라운 발언 하나.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 ‘민중은 개·돼지인데 왜 신경 쓰나’

정부 중앙부처의 국장이라는 직위가 결코 가볍지 않은데, 더욱이 다른 부처도 아닌 교육부 국장의 반민주적 발상에, 자신만만한 발언에 국민대중이 경악하는 것은 물론 집권 여당으로서도 참 골치 아픈 지경에 놓였다.

본인은 진심이 아니었다지만 듣기로는 충격적인 발언에 기자들이 재차 확인하며 녹취해도 좋은 지까지 확인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주장을 펴 놓고서 국회에서는 진심이 아니었다고 발뺌을 했다고도 했다.

졸지에 개·돼지로 전락한 대다수의 평범한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개돼지로 전락하는 모멸을 피한 지배층 또한 입장이 거북하기는 매한가지일 듯하다. 옛 성현들이 괜스레 민심을 살피라고 그 토록이나 열심히 가르치고 당부했겠는가.

공자도, 맹자도, 순자도 거듭해서 민심을 이반하지 않는 정치를 얘기했다.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강조했다. 그랬기에 계급사회였던 조선왕조에서도 사대부들이며 선비들이 민심을 존중하도록 임금에게 간언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계급사회일수록 오히려 백성의 소리를 직접 들을 기회가 적은 만큼 지배층에서 스스로 미리 알고 대비해야 했고, 그래서 늘 잘 들리지도 않는 백성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노력했었다. 물론 조선 후기로 갈수록 왕조의 노후화가 진행된 까닭인지 지배층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백성과의 거리가 멀어져간 흔적은 역력하지만.

집안에 내려오는 조상들의 문집 중에 상소문들을 보노라면 소위 언론자유가 많이 신장됐다는 현대의 우리가 듣기에도 놀랄만한 문장들을 보게 되는 데 그 중 지금도 머릿속에 각인된 문장 하나가 “임금은 배요, 백성은 그 배를 띄우는 큰 바다이니 그 물이 요동치면 임금인들 무사하겠습니까.”였다. 아마도 순자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임금을 겁박하는 말로도 들릴 수 있는 말이어서 지금의 청와대 참모진들조차 저런 말을 하기가 쉽지는 않을 듯싶다.

지배층의 그런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조선왕조는 큰 전란들을 거푸 겪으면서도 세계사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518년이라는 왕조사를 기록한 장수 왕조로 남았다. 조선조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고 양반과 상민`노복들의 신분차이는 엄청났었기에 왕조가 망하고 식민지 시대를 겪으면서 신분 해방된 종들이 한동안은 습관처럼 옛 주인 밑에서 군말 없이 일하기도 했었다.

그런 조선왕조 시절에도 존재 인정을 받았던 백성들이 소위 민주화된 사회에서 졸지에 개돼지로 전락했다. 그런데 이런 모멸을 우리는 식민지 시절 일본인들에게서도 당해봤다.

일제는 조선 민중을 개·돼지로 표현하고 취급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그런 흔적들은 쉽게 찾아진다. 그런데 광복된 지 60년이 넘은 오늘날도 일제를 찬양하는 교과서 집필진들로 인해 사회가 양 진영으로 갈라져 갈등을 빚고 교육정책을 담당한 고위 공직자가 일제가 우리 민족을 향해 내뱉던 그런 어휘들을 그대로 반복해 사용하고 있다.

필자는 그가 그 말을 할 당시의 배경을 정확히는 모른다. 또한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불경기의 무게에 짓눌린 대중들로 인해 여기저기서 삐걱대는 소리도 들린다.

일본인들은 선거를 통해 평화헌법 폐지 세력에 힘을 실어줬고 영국은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제대로 모른 채 브렉시트 찬성표를 던져버렸다. 그런 대중들을 보며 과연 민주주의가 합리적 선택인가에 회의를 가져볼 수는 있다. 특히 직접민주주의가 때로는 어리석은 선택으로 인류를 이끌고 가기도 한다. 히틀러를 지지했던 옛 독일 국민들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선택된 소수의 정보에만 매달려 오판도 하고 눈 앞은 작은 이익에 정신 팔려 먼 미래를 내던져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비틀거리지만 인류사는 그런 갈짓자(之) 걸음으로 가면서도 결국은 대중들로 하여금 더 폭넓은 선택을 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역사를 이끌어 왔다. 이 나라를 위기에서 살린 것은 늘 잘못된 엘리트주의에 빠져든 지배층이 아니라 평소에는 존재조차 잊혀진 듯 지내던 그 ‘민중’들이었음을 엘리트들은 물론 일반 민중들조차 종종 잊고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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