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윤은식 기자] 직장 내 성희롱으로 해고를 당했어도 징계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면 부당하다는 법원판단이 나왔다.
4일 법조계 등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 13부 장낙원 부장판사는 국내 금융공기업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냈다.
해당 금융공기업 직원 A 씨는 비정규직 여직원을 상대로 "진지하게 만나보자", "한번 안아보자" 등 성희롱을 했다는 이유로 지난 2018년 면직 징계를 받았다. 그러자 A 씨는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중노위는 "징계가 지나치게 무겁고 구체적 해고 사유를 고지하지도 않았으므로 부당해고"라고 판정했다.
이에 회사는 중노위 판정에 불복, 행정법원에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재판부는 이 금융공기업이 A 씨를 징계해고하는 과정에서 절차상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금융공기업은 A 씨에게 인사위원회를 열 계획이라고 통보하면서 A 씨에게 성희롱성 말을 듣거나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피해자 3명의 진술 내용을 첨부하고 소명을 요구했다.
이후 인사위원회를 거쳐 A 씨에게 전달된 면직처분서에는 '직장 내 성희롱으로 회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질서를 문란케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만 적혀 있었다. A 씨가 처분 사유를 알려달라고 재차 요구하자 회사는 '소명을 요청한 피해자 진술 내용과 같다'고 회신했다.
재판부는 이 과정에서 "(금융공기업이) A 씨에게 해고 사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정도로 통지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유가 서면 통지되지 않은 면직 처분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A 씨에게 통지된 피해자들의 피해 진술이 2000년, 2013년, 2015년 등으로 나뉘어 있는 점도 문제가 됐다.
재판부는 "회사가 소명을 요구한 비위행위는 장기간 여러 피해자를 상대로 이뤄진 것이므로 A씨가 면직 처분에 다투려면 소명을 요구받은 비위행위 중 어느 것이 해고 사유로 인정됐는지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라며 "면직처분서만으로는 이를 알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2000년과 2013년 일어난 일은 이미 회사 규정상 징계 시효가 지난 경우였다"라며 "이 비위 사실이 해고 사유로 인정됐는지는 A 씨가 처분에 다툴지 결정하는 데 중요한 문제인데도 이것조차 명시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성희롱'에 대해 규정된 징계를 하지 않고 일반적인 징계 사유로 범위를 넓혀 가중된 처분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면직이라는 징계 역시 지나치게 수위가 높아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 금융공기업의 징계 일반기준은 '고의 또는 과실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행위'에 최대 면직의 징계를 할 수 있도록 하되, 세부기준은 성희롱에 대해 최대 정직의 징계를 하도록 따로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는 성희롱에 대해 별도의 기준을 마련해 최대 정직의 징계만을 가능하게 한 것으로 봐야지, 함부로 일반적 유형의 징계 사유 기준으로 돌아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라며 "A 씨의 비위행위가 사회적 물의를 야기한 사유에 해당하지만, 세부 기준상 성희롱이므로 최대한으로 내릴 수 있는 징계는 정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