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400원대 고착화···금융사 자본력 약화 우려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탄핵 정국발(發) 정치적 불확실성에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서 금융지주사들의 자본비율 관리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밸류업과 인수·합병(M&A) 계획도 줄줄이 막힐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들은 탄핵 정국 돌입으로 시장 변동성이 확대됨에 따라 밸류업을 계획대로 이행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커지자, 이를 진화하기 위해 투자자들과 소통하며 주주가치 제고 의지를 재차 밝히고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지난 10일 투자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경영환경 불확실성에 대비해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 시나리오별 계획을 수립하고 대응 전략을 마련, 시장 충격에 대비하고 있다"며 "유동성 리스크를 포함한 리스크 전반을 선제 모니터링하는 한편, 그룹 재무 펀더맨털 안정성도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KB금융지주도 최근 해외투자자들에게 서한을 보내고 "일련의 사태에 따른 시장 불확실성 확대에도 불구하고 보통주자본비율(CET1)·리스크 관리를 통해 기존에 공시한 밸류업 방안을 변함없이 이행하는 등 주주가치 극대화에 힘쓰겠다"고 전했다.
하나금융지주도 9일 발송한 주주서한에서 "최근 국내 불확실성 확대에도 경영진의 주주가치 제고 의지와 그룹의 양호한 펀더멘털을 기반으로 한 밸류업 계획을 흔들림 없이 이행하겠다"며 "환율상승 리스크를 대비해 그룹의 위험가중자산 관리 체계를 강화했고, CET1을 안정적인 수준으로 관리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우리금융 또한 해외투자자를 대상으로 컨퍼런스콜을 진행, 주주환원 정책을 흔들림 없이 시행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금융지주사들이 주주가치 제고 의지를 재차 밝히고 있지만, 밸류업이 계획대로 이행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은 외환시장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신용위험가중자산(RWA)이 늘어 그룹의 자본력이 쪼그라들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 급격한 변동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만 해도 1370원에서 1400원 초반대 사이를 움직이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급등, 현재 1430원대까지 치솟은 상황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당일에는 1445원선을 돌파, 밤 사이 40원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이날에는 전 거래일 종가보다 5.3원 오른 1432.2원에서 주간거래를 마쳤다.
금융당국이 연일 금융시장 점검회의를 열고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탄핵 정국 장기화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원·달러 환율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1400원대 환율이 고착화되는 것을 넘어 1500원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고환율 흐름이 이어지면서 금융지주사들의 CET1도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CET1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밸류업 계획 역시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앞서 KB금융과 신한금융은 CET1 13%를 초과하는 잉여자본은 추가 주주환원에 활용하겠다는 밸류업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하나금융도 CET1을 13.0~13.5%로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우리금융은 CET1은 올해 말까지 12.2%로, 내년까지 12.5%로 끌어올리겠단 목표를 제시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지주사의 경우 환율이 10원 높아질 때마다 자기자본비율이 0.01~0.03%p(포인트) 낮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9월 말 기준 금융사들의 CET1을 보면 △KB금융 13.85% △신한금융 13.13% △하나금융 13.17% △우리금융 11.96% 등이다.
시장 우려대로 원·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올라갈 경우 대부분의 금융사들이 CET1 목표치를 밑돌게 된다. 이미 연말까지 목표치 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우리금융의 경우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금융은 동양·ABL생명 인수를 위해 충분한 자본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고환율 부담이 더 크다. 이미 지난 10월부터 우리은행에 대한 정기검사를 진행한 금융감독원은 동양·ABL생명 인수를 위한 자본력이 충분한지에 의문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보통 11월 말이면 내년도 업무계획이 얼추 나오는데, 12월 들어 환율이 급등했기 때문에 자본비율 계획에도 영향이 갈 수 있는 상황"이라며 "자본력이 줄면 내년도 대출공급 운영은 물론 전반적인 사업계획에도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