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워치③] 한국전력 122년 史, 건청궁 전등에서 원전까지
[공기업워치③] 한국전력 122년 史, 건청궁 전등에서 원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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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빈곤국'에서 전력 '수출국'으로
탈원전으로 '신재생에너지' 새로운 도전
건청궁 내원과 향원정(오른쪽), 옥호루 뜰에 설치된 아크등.(사진=한국전력)
건청궁 내원과 향원정(오른쪽), 옥호루 뜰에 설치된 아크등.(사진=한국전력)

[서울파이낸스 윤은식 기자] 어둠을 밝히는 것이라고는 등잔불이 전부였던 1887년 조선. 경복궁 내 건청궁에 전깃불이 들어오자 사람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깨비불'이라며 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전력 사사(社史)는 조선에 처음 전기가 들어온 당시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어스름이 짙게 깔린 경복궁 내 건청궁. 작은 불빛 하나가 깜빡 깜빡 하는가 싶더니 처음보는 눈부신 조명이 갑자기 주위를 밝혔습니다. 주위에 모여든 남녀노소들이 모두 감탄사를 터트렸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전깃불을 여러 이름으로 불렀다. 당시 발전기에서 전력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전등이 깜빡였는데 이를 보고 '도깨비불'로 부르기도 했고, 전등 설치에 많은 비용이 들었고 정전이 잦아 건달 같다고 해서 '건달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건청궁에 우리나라 최초 전등이 밝혀진 것은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지 8년 만에 일이다. 전구를 밝히기 위해 경복궁 내 향원정에 설치한 발전기는 당시 동양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16촉 광열등 750개를 점등할 수 있는 규모였다.

전기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고종은 1898년 1월 26일 서울에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회사인 '한성전기'를 설립하며 전기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이것이 현재 한국전력의 모태다. 이후 120년 넘게 이어진 우리나 전력의 역사는 한전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한전은 한성전기 설립일을 창립기념으로 하고 있다.

한성전기는 동대문 발전소에 200kW 발전설비를 설치, 전차와 전등에 전력을 공급하며 전기사업을 본격화한다. 1900년 4월 10일 종로 거리 일대에 가로등 3개를 전차 정류소와 매표소에 설치했는데 이것이 민간 점등의 시작이다. 정부는 이날을 '전기의 날'로 지정해 매해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기사업의 시련은 1945년 광복 후 찾아왔다. 일제의 한반도병참기지화로 광복 당시 한반도 발전설비는 172만3000kW에 달했다. 이중 남한의 발전설비는 전체 설비의 11.5%에 해당하는 9000kW에 불과했다. 

한국전쟁 이전 남한은 북한으로부터 총 전력의 60%를 수전(受電)해왔으나 1948년 북한이 일방적으로 전기를 끊어 전력 사정이 급격히 나빠지게 된다. 이 사건이 '5·14 단전사태'다. 게다가 남한은 한국전쟁 기간 발전설비 50%가 파괴돼 전력난이 더욱 심화했다.

한성전기 사옥(오른쪽)과 전차매표소와 한성전기 직원.(사진=한국전력)
한성전기 사옥(오른쪽)과 전차매표소와 한성전기 직원.(사진=한국전력)

한국전쟁 휴전 이후 1961년 남한은 전력난 해결을 위해 당시 조선전업, 경성전기, 남선전기 등 전기회사 3곳을 통합해 '한국전력주식회사'를 설립한다. 1962년 한국전력은 제1차 전원개발 5개년을 수립하고 전력난 타개에 몰두한다. 그 결과 1310kW의 제주내연, 3만kW의 삼척화력2호기, 6만6000kW의 부산화력1호기 준공 등으로 1964년 1월 '무제한 송전' 시대를 열 수 있게 됐다. 해방 후 되풀이해오던 전력난을 해소하는 순간이었다.

국내 전력 사업은 70년 경제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전력시설이 늘어나 공급과잉 현상도 나타났지만,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전력예비율(전력 수급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이 3.9%까지 떨어져 일부 제한 송전이 실시되기도 했다. 이후 발전 연료 다양화와 시설 대용량화로 전력 정책이 전환돼 1979년 3월 우리나라 전역을 연결하는 154킬로볼트(kV) 대환상선 준공, 같은 해 10월에는 여수화력과 신옥천변전소를 연결하는 189.3km 345kV의 송전선이 개통했다.

1978년에는 고리원자력 1호기를 준공하면서 원자력 발전시대를 열었다. 1982년 1월 한국전력주식회사는 한국전력공사로 개편하고 같은 해 천연우라늄을 연료로 하는 중수로형 원전인 월성1호기를 준공한다. 이후 1985년 고리원자력 3호기, 1986년 고리 4호기, 영광 1호기를 차례로 준공했다. 

원자력 발전 준공으로 발전설비는 한국전력주식회사가 창립한 1961년 보다 50배 가까운 1806만kW에 이르렀다. 1989년 말 발전설비는 2000만kW를 돌파하며 원자력 발전량이 총발전량의 50%를 넘어 본격적인 원자력 발전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1990년 한전은 한반도에 전깃불이 켜진 후 108년 만에 국내 전력사업을 해외에 수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1995년 2월 필리핀 말라야 화력발전소 성능복구 사업을 수주한 것. 한전은 이를 신호탄으로 이듬해에는 필리핀 일리한 복합화력발전소 건설, 운영 사업도 수주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원자력발전 수출국 반열에 오른 때는 2009년. 한국전력이 2008년말 아랍에미리트(UAE)가 원전 사업 참여를 공식 요청하면서부터였다. 우여곡절 끝에 한전은 UAE 원전 최종사업자로 선정됐고 해외시장 개척 15년 만에 원전 첫 수출이라는 신화를 창조해 냈다.

원전 수출 신화에도 한전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 등으로 경영상황이 좋지 않은 상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전은 신재생에너지 전환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를 위해 한전은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41.2GW를 목표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계획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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