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유은실 기자] '제2의 국민건강보험'이라고 불리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둘러싼 논의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12년째 논의 중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종이 서류를 전자형태의 문서로 바꾸는 작업이라 보험료 인상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보험업계 주장과 민감한 의료정보가 유출되면 결국 보험료 인상 등 소비자에게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료계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결국 전산화가 되더라도 '의료기록' 중 어떤 정보를 누구와 공유할 것이냐가 핵심 사안으로 떠올랐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보험업법이 통과돼 실손보험 청구가 전산화된다면 '나의 어떤 정보가 공유될지'에 대해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2일 보험업계와 국회에 따르면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은 모두 5건이다. 이 법안들은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골자로 만들어졌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보험계약자가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일일이 보험사에 전송할 필요 없이 병원에서 보험사에 전자문서를 직접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 의료업계 "소비자 결정권 침해···보험료에 영향"
양 업계는 '의료기록 공유'와 '소비자 편익' 측면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먼저 의료업계는 "예민한 정보나 질병·치료 등 진료와 상관없는 다른 정보까지 모두 보험사로 전달되면 결국 소비자의 자기 결정권이 침해된다"며 "장기간으로 보험료가 올라가는 등 소비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청구 전산화와 정보 제공 의무화가 법제화되면 의료기관은 보험사가 달라는 정보를 줄 수밖에 없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본인의 정보가 어떤 목적으로 활용하는지 알 수 없어 결과적으로는 '정보 비대칭' 문제가 심화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준현 건강정책참여연구소 대표는 "여러 정보가 모여 보험료 산정, 가입 심사 제한, 상품 개발에 활용되기 때문에 (전산화가 되더라도) 가입자들한테 제공한 정보에 대한 열람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며 "계약 주체인 보험사가 소비자 편의를 위해 자체 시스템을 만들어 이를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의료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4세대 실손보험도 적자를 이유로 가입 문턱을 높였다고 알고 있다"며 "그러면서 소비자 편의를 위해 청구 전산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모순적"이라고 주장했다.
◇ 보험업계 "보험료 인상 추측일 뿐···본질은 소비자 편익"
보험업계는 의료계가 주장하는 '보험료 인상', '가입 심사 제한'은 막연한 추측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장 보험금 누락분이 청구되면 보험료가 증가할 수 있겠지만 일시적인 현상이고, 실물 서류로만 청구해야 하는 소비자의 불편함을 줄이겠다는 것이 '전산화'의 본질이라는 주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청구 서류를 실물로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청구 과정에서 문제로 지적돼 왔는데, 비급여 진료가 감소할 것으로 우려하는 의료계의 반발로 보험업법이 국회에서 보류되고 있다"며 "실손보험은 적절한 요율·적절한 보험료·편리한 지급 이 세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보험업법에서도 개인 의료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인지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보관·비밀누설 금지의무와 처벌규정을 만들었다"며 "의료계가 주장하는 정보 활용을 통한 보험료 인상, 가입 심사 제한 등은 법상으로 불가능하다. 또 정보도 보험금 청구를 위한 수준으로만 요구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전산화를 통해 오히려 정보유출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문혜정 보험연구원 연구원은 "영국 사례에서 보면 실물 서류방식이 정보유출 문제가 더 많이 일어나고, 전산화를 통해 청구 서비스를 제공했을 때 정보 유출 사건이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오히려 전산화의 장점으로 정보유출 예방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산화가 되면 아마 표준양식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어떤 정보를 제공할지에 대해 당국, 보험, 의료업계가 충분히 논의한 이후에 양식이 만들어지면 의료업계에서 주장하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