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라는 극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대한민국의 중소상인·자영업자들은 역사상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더욱 무서운 것은 이러한 위험 상황에서 대기업 플랫폼들은 탐욕의 민낯을 드러내며 우리들의 삶의 터전을 앗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쿠팡시장침탈저지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자영업비대위)가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건물 2층 아듬드리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한 투쟁 선언문의 일부다.
이날 자영업비대위는 쿠팡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온라인 플랫폼을 앞세워 '골목상권'에 뛰어들며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현장에서 자영업비대위의 주장을 들어보니 수긍할 만한 내용이 있었다. '위드 코로나' 시대 대기업들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모은 개인정보를 토대로 '개인 맞춤형 서비스'란 명분을 내세워 소비자들의 일상을 파고든다는 얘기였다.
음식배달 앱(응용 프로그램) 따위 온라인 플랫폼이 '정보 독식'을 통해 골목상권에서 장사하는 자영업자와 소비자 간 관계를 끊는다는 것이다. 자영업비대위는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요기요 등이 식당과 손님을 이어주는 대가로 중계수수료와 결제수수료, 배달료를 챙길 뿐 아니라 '단골'이 누군지도 알 수 없게 만든다고 했다.
"중소상인·자영업자들은 그간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SSM), 복합쇼핑몰 등을 저기하기 위해 때로는 목숨을 건 단식투쟁도 마다하지 않으며 온몸으로 저항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대재앙 앞에서 쿠팡을 비롯한 대기업 플랫폼들은 소비자 편익과 공유 경제라는 명분을 앞세워 너무나 쉽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자영업비대위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명분으로 온라인 플랫폼들이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나섰다고 했다. 근거로 내세운 건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의 '비(B)마트'와 '배민상회', 요기요의 '요마트', 쿠팡의 '쿠팡이츠 마트'와 '쿠팡이츠딜' 등이다.
특히 자영업비대위는 대기업들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만들어진 비대면 생태계를 '몸집 불리기' 빌미 삼아 즉시 배송(퀵커머스) 경쟁을 벌인다며, 그 사례로 쿠팡이츠 마트를 꼽았다. 쿠팡이 서울 송파구에서 시범 사업을 시작한 쿠팡이츠 마트는 식재료나 생활필수품을 한 시간 안에 배달해주는 사업이다.
자영업비대위는 네이버, 롯데, 신세계도 즉시 배송에 뛰어들어 골목상권 죽이기에 가세했다고 주장했다. 네이버는 신세계·CJ대한통운과 지분을 바꾸면서 즉시 배송 사업 태세를 갖췄고, 신세계와 롯데도 즉시 배송과 오픈마켓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어 자영업비대위는 "손을 놓고 있으면 모두 죽는다는 절실한 심정으로 처참한 자영업자의 현실을 알리고, 쿠팡과 같은 플랫폼-유통 대기업의 행태를 비판하고, 우리 삶의 터전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자영업비대위가 기자회견을 연 날 쿠팡에 확인해보니 "즉시 배송은 대형마트와 포털 사이트는 물론 소매 대기업과 배송중개업체가 이미 진출한 시장으로 쿠팡은 후발주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또 "쿠팡은 대형마트 등에 입점하지 못한 수많은 소상공인의 상품을 직매입과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온라인 판로를 열어준다"고 덧붙였다.
자영업자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입장은 다르다. 소비자는 자영업자가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 편인 거 같다. 소비자한테 온라인 플랫폼은 편하기 그지없다. 특히 쿠팡의 '로켓배송'은 소비자 입장에서 '혁신'이다. 로켓배송을 요청할 수 있는 '와우회원'이 당장 필요한 물건을 오늘 밤 주문하면 내일 아침까지 배달해주기 때문이다.
'위드 코로나' 시대 비대면은 더욱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도 온라인 유통 시장은 성장세였다. 특히 스마트폰 대중화 이후 모바일 유통 시장은 날마다 커졌다. 필자 아내도 모든 장보기를 스마트폰으로 해결한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온라인 플랫폼도 '공정'이란 가치를 지켜야 한다. 비대면의 대세 흐름 만큼 '상생'의 관점에서 공정 가치를 플랫폼 사업자들은 쉽게 거부 내지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자영업비대위는 "비대면 생태계가 대세란 걸 부정하는 게 아니라 공정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자영업비대위 쪽에 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이주한 변호사는 "미국 사례를 토대로 '(시장 지배적 온라인) 플랫폼독과점방지법' 제정 발의를 정치권에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이주현 생활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