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경제 전환시 금융시스템에 영향"
"통화정책 수단에 기후변화 리스크 반영"
[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글로벌 금융위기 및 코로나19 등을 겪으면서 확장적인 중앙은행의 역할이 점차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최근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기후변화 대응에 대해 중앙은행으로서의 방향을 제시했다. 한은은 선도적인 기후변화 리스크 연구를 통해 향후 우리 경제가 맞이할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는 방침이다.
한은은 28일 '기후변화와 한국은행의 대응방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임호성 금융안정국 금융안정연구팀장은 "심각한 기후변화가 우리 경제에 새로운 형태의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면서 "중앙은행의 책무인 물가안정 및 금융안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에 따른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이 큰 비용과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가 미래성장동력을 확충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 경제성장률 최대 0.32%p↓, 물가상승률 최대 0.09%p↑
먼저 한은은 탄소중립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 과정이 장기간에 걸쳐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과 금융시스템에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한은이 분석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탄소중립을 위해 탄소세를 부과하는 경우 오는 2050년까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연평균 0.08~0.32%p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나리오는 주요국 중앙은행과 금융감독 당국들이 기후관련 금융 리스크 관리를 위해 2017년 만든 녹색금융협의체(NGFS)의 분석을 토대로 205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 대비 약 70% 감축하는 '2℃ 시나리오'와 더 나아가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해 온도 상승폭을 1.5℃ 이내로 억제하는 '1.5℃ 시나리오'로 구성해 분석했다.
탄소가격 정책은 효과적인 친환경 기술 및 정책 등으로 보완되지 않을 경우 장기간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특히 배출량을 100% 감축하는 1.5도 시나리오에선 2040년 이후 온실가스 배출비용이 빠르게 상승함에 따라 이행리스크 영향이 크게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가격 정책이 효과적인 친환경 기술 및 정책 등으로 보완되지 않을 경우 기업의 생산비용을 증대시키고, 물가 역시 0.02~0.09%p 증대시킬 것으로 분석했다.
이행리스크가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국내은행 자기자본비율(BIS 기준 총자본비율, 이하 'BIS비율')이 2℃ 시나리오에서는 최대 2.6%p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1.5℃ 시나리오에서는 최대 5.8%p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현실화된다면 물리적리스크 피해 기업의 금융자산 가치 하락이 발생해 같은 자산을 보유한 금융기관의 건전성도 악화될 것이란 관측이다.
임 팀장은 "탄소중립을 위한 온실가스 저감기술이 상용화 되지 않을 경우 우리 경제와 금융시스템이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임을 시사한다"면서 "이번 분석 결과는 2050년 탄소중립 등 장기간의 기후변화 대응이 우리 경제와 금융에 미치는 영향을 동시에 분석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 중앙은행의 대응 필요성↑···"통계 기반·정책수단 마련"
이처럼 한은은 기후변화가 우리경제 및 금융시스템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파급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을 적극 수행한다는 방침이다. 한은은 주요국 중앙은행의 기후변화 대응사례를 참고하되, 한국은행의 정책수단 중 우리나라 정책운영 여건에 맞는 수단을 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친환경 부문으로의 자금공급을 원활히 유도하기 위해 대출 및 지급 결제제도, 공개시장운영 등의 활용 가능성을 모색하고, 외화자산운용 시 기후변화 관련 가중치를 높여 친환경 부문의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중개지원대출(금중대)을 통해 녹색성장기업 등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금중대는 중소기업 등에 대한 대출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한은이 은행에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또한 대출담보증권에 녹색채권이 추가될 경우 차액결제이행용 적격담보증권의 범위를 동일한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외에도 △환매조건부매매 및 증권대차 담보 대상증권 확대 △ESG 주식 및 채권 투자 확대 지속 △네거티브 스크리닝 전략 확대 적용 등을 제시했다.
다만, 한은은 구체적인 계획 및 수치, 도입 시기 등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아직 계획 수립 초기 단계로써 세부적인 계획 및 수치들을 밝히진 않았지만, 기후변화에 중앙은행으로서 적극 대응하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주는 데 의의가 있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임 팀장은 보다 구체적인 안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실시 시기 등과 같은 면에서는 현재 모든 것을 밝힐 수는 없다"면서 "이번 보고서는 중앙은행 입장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위험성을 고려하고, 앞으로 적극 대응해 나가겠다는 신호를 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했지만 현재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고, 이런 검토를 마친 뒤에는 후속조치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