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남궁영진 이진희 기자] "사전·사후에 균형있는 금융감독을 통해 신뢰받는 금융시장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겠다. 법과 원칙에 기반한 금융감독이 공감을 얻기 위해 시장과 활발히 소통하는 데도 주력할 것."
오는 12일 취임 100일을 맞은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의 금융감독 기치는 규제와 처벌, 사후 감독 대신, 사전 감독 강화와 예방 지원으로 요약된다. 금융업계와 간담회를 통해 업계 의견을 적극 수렴, 시장과 적극적 소통에 나서는 등 취임 당시 했던 공언을 지키려는 의지가 엿보인다는 평가다.
◇취임 100일 '광폭 행보'···사전적 검사·금융사 지원 강화
정 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지난 100일 동안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취임사를 통해 금융감독기관의 지향점을 재정립하겠다고 다짐한 그는 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가 새로 설계한 지향점은 강력한 규제·감독을 강조한 윤석헌 전 금감원장과는 달리 시장친화적 색채를 띤다. 취임 당시부터 사전 감독을 통한 리스크 예방 지원 정책을 강조한 정 원장은 금융시장 및 업계와의 협력을 강화해 금감원의 검사 체계를 탄력적으로 정비하려는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친시장적인 행보가 금감원의 방향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일 금융지주 회장과의 간담회에 이어 9일 시중은행장과의 간담회에서 정 원장은 '사전적 예방'에 중점을 둔 균형 잡힌 검사 체계로의 개편을 재천명했다.
윤 전 원장 시절 부활시킨 종합검사보다는 선제 대응에 용이한 수시 테마검사를 통해 금융사들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종합검사는 금융기관의 업무 전반과 재산 상황 등 경영에 대해 들여다보는 규모가 큰 검사인 만큼 금융사의 부담이 큰 제도다. 그간 금융권에서는 금감원의 종합검사를 두고 '먼지털기식' 검사라며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당초 이달 열릴 것으로 예고됐던 우리금융지주, 우리은행에 대한 종합검사가 보류된 것도 정 원장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열린 지방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도 윤 원장은 "종합검사 폐지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현행법에 비춰 원칙에 벗어난, 과도한 재량적 검사를 줄여 (감독방향을) 정상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전적 검사를 더 강화하겠다는 게 그의 방침이다.
이와 함께 정 원장은 금융지주의 경쟁력을 높이는 등 적극 지원 역시 예고한 상태다. 지주그룹 내 고객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도록 돼 있는 현행법 등 현장의 애로 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제도 개선 등을 돕겠다는 것이다.
은행 경쟁력 강화 방안도 지원한다. 언급된 방안으로는 은행의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산정 방식을 전향적으로 개선해 과도한 고유동성자산 보유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정 원장이 거듭 '지원'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만큼 금융권에선 새로운 금감원에 대한 기대가 크다.
◇금융사 제재·가계부채 등 현안 산적···정은보式 방책은?
금융권에서도 정 원장의 감독 방안을 두고 대체로 호평하는 분위기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정 원장이 최근 간담회에서 천명한 감독·검사 지향점을 보면 효율성과 유연성을 염두에 둔 점이 눈에 띈다"면서 "금융사와의 소통채널을 강화하고자 하는 움직임 역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정 원장은 35년여 금융 관료로서 업무 이해가 높고, 내부 소통에도 적극적인 편으로 알려졌다. 취임 두 달 만에 선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대장동 개발사업' 등 여야 간 정쟁의 방편이 될 만한 이슈에도 비교적 의연하게 대응, 그간의 관록을 십분 발휘했다는 평도 받는다.
금융권 감독 총괄자로 100일간 본연의 업무를 무난히 수행해 온 정 원장은 앞으로 산적한 현안 해결에 고심할 전망이다. 코로나19 이후 급변한 금융 환경에 대응, 안정을 꾀하는 한편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관련 소송, 사모펀드 관련 금융사 제재 등 과제를 풀어갈 방책에 관심이 모인다.
훼손된 신뢰 회복에도 만전을 기할 것으로 보인다. 무수한 피해자를 양산한 라임·옵티머스 등 일련의 사모펀드 사태에서 금감원의 부실한 관리·감독을 질타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정은보호(號)가 '금융검찰'로의 역량을 어떻게 발휘할지 소비자와 업계는 자못 기대하고 있다.
가상자산 관련 현안과 가계부채 관리 역시 중점적으로 풀어나갈 과제다. 정 원장이 금융 정책 및 국제금융 분야의 탁월한 업무 전문성과 거시경제 관련 폭넓은 이해·경험을 한껏 적용할 것이란 기대가 금융권 안팎에서 나온다. 금융위와의 화합을 통해 향후 금융정책 기조에 어떤 변화로 이어질지 관심이 높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전·사후에 균형있는 금융감독을 통해 신뢰받는 금감원을 만들겠다는 정 원장의 의지는 고무적"이라면서도 "의구심을 갖는 분위기도 적잖이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업계·시장 안팎의 현안 외에도 인사 적체 등 내부 문제도 순조롭게 해결해 나갈지 주목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