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삼성전자에 이어 LG전자도 러시아행 물품의 선적을 중단키로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이후 글로벌 해상 물류에 차질이 생기는 등 대외적인 상황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내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20일 자사 글로벌 뉴스룸을 통해 "러시아에 대한 모든 선적을 중단한 상태"라고 밝혔다. LG전자의 러시아행(行) 제품 출하 중단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악화한 해상 물류 상황 때문이다. 독일, 스위스 등의 글로벌 선사들은 대러시아 제재 동참, 물동량 감소 등으로 러시아 선적을 중단했다. HMM 등 국내 선사도 극동노선 운항을 잠정 중단하는 등 현실적으로 기업들이 러시아 수출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앞서 삼성전자 역시 같은 이유로 지난 5일 러시아행 제품 선적을 중단했다.
양사 모두 전격적인 러시아 시장 판매 중단을 선언한 건 아니지만 국제적인 러시아 제재 여론에 부응하는 수준에서 전략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가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스타벅스, 코카콜라, 나이키 등 소비재 기업뿐 아니라 애플, 인텔, 보잉, GM, 볼보, 테슬라 등 각 분야 글로벌 기업들의 러시아 보이콧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섣불리 시장 철수를 결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 30%대 점유율로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는 현지 점유율 15%로 2위인 애플을 크게 앞지르는 것이다. 세탁기·냉장고 등 생활가전 분야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1위를 다투고 있기도 하다. LG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와 그 주변국에서 거둔 매출은 2조335억원이다. 아직 전체 매출의 2.7% 수준이지만 전년 대비 성장률은 22%에 이른다. 매출이나 사업 비중으로만 봤을 때 큰 규모는 아니지만 현지 내 높은 브랜드 인지도 등에 따라 성장성이 큰 시장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오랫동안 공들여 쌓은 러시아 시장 주도권을 중국 등 다른 기업에 뺏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러시아 점유율 1위인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 등 중국의 친러시아 성향 기업들은 대러 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 정부가 철수 기업의 자산을 국유화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은 점도 부담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적극적인 보이콧 동참보다는 선적·출하 중단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한 배경으로 풀이된다.
현재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러시아 현지 공장 등은 가동되고 있다. 부품 수급 지연 등으로 일부 차질이 생기는 경우가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돌아가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에서 TV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이 공장에는 약 1000명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의 경우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에서 냉장고와 세탁기를 생산·판매하는 법인 'LG Electronics RUS, LLC'을 설립해 운영해왔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6일 열린 주주총회 자리에서 이와 관련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상황 주시하고 있고 러시아에 대한 제품 공급 중단한 상황"이라며 "앞으로도 사업에 끼칠 영향 최소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면에서 비상 계획을 준비하고 면밀히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LG전자 측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LG전자는 모든 사람의 건강과 안전을 깊이 우려하고 있으며, 인도적 구호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