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IMF 외환위기 이후 24년 만에 처음으로 6%에 도달하면서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속도도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물가 잡기'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지만 대외 충격발(發) 물가 급등세는 좀처럼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인데, 한은이 오는 13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사상 첫 '빅스텝'(0.5%p 금리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특히 하반기 중 물가상승률이 7%대를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이달에 이어 내달까지 두달 연속 빅스텝이 단행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 23년 7개월 만에 6%대 물가···근원물가도 금융위기 이후 '최고'
통계청이 5일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8.22(2020년= 100)로, 전년동월대비 6.0% 상승했다. 과거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 11월(6.8%) 이후 23년7개월 만에 최고 상승폭이다. 당시에는 외환위기 이후 구제금융 신청과 맞물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원자잿값을 중심으로 수입 비용이 크게 증가했던 시기다.
기조적인 물가 흐름을 나타내는 근원물가(에너지·식품류 제외)도 같은 기간 4.4% 상승해 지난 2009년 5월(4.5%) 이후 최고 상승폭을 기록했다. 체감물가로 평가되는 생활물가지수(7.4%) 역시 1998년 11월 이래 최대폭 상승을 기록했다.
한은은 이에 대해 원유, 곡물 등 해외 공급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으며 대면서비스를 중심으로 수요측 물가상승압력도 상당폭 높아진 데서 기인했다고 설명했다. 이환석 부총재보는 물가 발표 직후 열린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기대인플레이션 상승 등으로 여타 부문으로도 물가상승압력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경기침체 우려 확산 등으로 향후 국제유가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나 단기간 내 고(高)유가 상황이 쉽게 해소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앞으로도 고유가 지속,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수요측 물가상승압력 증대, 전기료·도시가스 요금 인상 등으로 당분간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 긴축 우려보다 '물가 잡기' 최우선···2연속 빅스텝 가능성도 제기
이에 따라 한은의 금리인상 시계도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앞서 한은은 지난달 열린 물가상황 점검 회의에서 금리인상 속도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물가 오름세가 하루가 다르게 가팔라지고 있지만, 금리인상 여파로 경기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던 탓이다.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 무역적자는 103억달러 규모로 역대 상반기 기준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여기에 지난달 소비심리지수(CCSI)는 1년 4개월 만에 '비관적' 전망으로 돌아섰다. 특히 '빚투(빚내서 투자)'·'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대표되는 가계부채 누증 우려는 더욱 크다. 1859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중 변동금리 비중은 77.3%(잔액 기준)로, 금리가 0.5%p 뛸 때 연간 7조원의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
하지만 물가가 외환위기 이후 처음 6%대까지 올라선 점은 '물가 안정'을 도모해야 할 한은 입장에서 상당한 부담일 수 밖에 없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5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도 "당분간 물가에 보다 중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와 기준금리 상단(1.75%)이 같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달에 이어 이달에도 '자이언트스텝'(0.75%p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금리상승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금리가 높은 '금리역전' 현상이 일어날 경우 외국인이 국내에 투자한 자본을 회수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향후 물가가 7%대까지 올라설 수 있다는 전망은 한은의 빅스텝 행보에 더욱 무게를 싣고 있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향후 전망과 관련해 "지금처럼 높은 상승폭 유지하면 (물가상승률이 7~8%에 도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전월대비 0.6~0.7% 계속 상승하고 있는데, 이런 상승폭은 연간으로는 8.2%까지 올라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우려했다.
이에 이달에 이어 내달까지도 빅스텝을 단행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시장의 대표 금리인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이날 오전 3.43%까지 뛰면서 현 기준금리와 1.7%p 차이를 보였다. 통상 3년물 금리가 기준금리와 0.2~0.3%p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현재 시장에선 연말 금리 상단 전망을 3.25%까지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올해 남은 네 차례(7·8·9·11월) 금통위 회의 중 두 번의 빅스텝도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국내 7월 소비자물가(8월2일 발표)와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7월13일 발표)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면서 "단기적으로는 이번 주 금요일 발표될 미국의 고용보고서도 시장 컨센서스에 부합한다면 연준의 긴축을 뒷받침할 수 있다. 오는 8월 금통위에서도 빅스텝이 단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