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등에도 차익 실현보다 안전자산 확보 수요 커
非달러 줄고, 달러만 급등한 사례 '코로나19 충격 직후'
"환율 상승 기대 및 충격 대비한 예비 수요 필요 판단"
[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지난달 거주자 외화예금이 12억3000만달러 늘었다. 통상 환율이 뛸 때 외화예금은 차익 실현 등으로 빠져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앞으로 미 달러화 가치가 더욱 올라갈 것이란 기대에 매도를 지연한 것은 물론, 최근 실물 경제 및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이면서 위기 상황에 대비한 움직임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은행이 20일 발표한 '2022년 9월중 거주자외화예금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외국환은행의 외화예금 잔액은 895억달러로 직전월보다 12억3000만달러 증가했다. 거주자 외화예금은 내국인과 국내 기업, 국내 6개월 이상 거주한 외국인, 국내 진출한 외국 기업 등의 국내 외화예금을 말한다.
올해 외화예금은 글로벌 강(强)달러 기조 속 차익 실현을 위한 매도 흐름이 꾸준히 나타났다. 실제 외화예금은 역대 최대 잔고를 기록한 지난해 11월(1030억2000만달러) 이후 꾸준히 감소세를 보였다. 지난 4월(869억9000만달러)에는 15개월 만에 처음으로 800억달러대로 내려앉았고, 이후 800억원 후반대에서 횡보세를 보이고 있다.
특이한 점은 지난달 환율이 최근 시기와 비교해 높은 수준의 급등세를 보였으나, 차익 매도 실현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달 말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430.2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직전월 말(1337.6원) 수준보다 무려 92.6원(6.92%)이 높았다. 이는 직전 3개월동안 환율이 올라선 수준(100.4원)과 맞먹는다.
이때 외화예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달러화(772억6000만달러, 전체 중 86.3%)는 수출입 결제대금 예치 및 현물환 매도 지연 등 기업을 중심으로 23억6000만달러 증가했다. 특히 달러를 제외한 △엔화(-4억6000만달러) △유로화(-6억달러) △위안화(-6000만달러) △기타통화(-1000만달러) 등 다른 외화예금은 모두 줄어든 데 반해, 달러만 증가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한은의 평가다.
이런 현상에는 먼저 '킹달러' 현상이 앞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란 기대감이 형성됐을 것이란 관측이다. 통상 환율 상승은 차익 매도 실현으로 이어지지만, 앞으로 환율이 더욱 높게 형성될 것이란 기대가 커지면서 예금을 일시적으로 묶어두고 매도를 늦추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모니터링한 기업들은 환율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잇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최근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위기 의식에 따라 달러 현금을 확보하려고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시장 내 지배적인 움직임은 아니지만, 최근 대내외 금융시장이 연일 출렁이는 데다, 실물 경기에서도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글로벌 대표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달러 예금을 확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감지됐다는 것이다.
우려스러운 건 이처럼 비(非)달러 통화는 모두 줄어들고, 달러만 급증한 사례는 우리 경제에 큰 충격이 일었던 시기라는 점이다. 실제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지난 2012년 이후 비슷한 최근 사례를 살펴보면 코로나19가 세계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가 충격에 휩싸였던 지난 2020년 4월이었다.
당시 국내 거주자 외화예금은 4월 중 28억9000만달러가 증가해 1년 4개월 만에 최대폭 증가를 기록했다. 이중 달러 예금 증가폭은 35억4000만달러에 달했다. 이때 달러 예금(680억달러)은 지난 2019년 12월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한은 관계자는 "모든 기업들의 동향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현재 기업들 중 일부는 최근 경기가 진행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충격을 대비한 현금을 확보하는 게 좋을 것이란 판단에서 예비적 수요가 늘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지난 2020년 5월에는 다시 일반적인 흐름으로 회귀했던 것처럼 외화예금 추이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