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11개월째 역성장···기업대출 6조 늘어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은행권이 앞다퉈 수신금리 인상 경쟁을 펼쳤던 지난달 5대 시중은행에서 정기예금이 한 달 만에 약 20조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은행 입장에서 이자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 '공짜 예금'으로 불리는 저원가성 예금이 대폭 줄면서 수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정기예금 잔액은 827조2986억원으로 전월(808조2276억원) 대비 19조710억원 증가했다.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10월 사상 처음으로 800조원을 넘어섰고, 이후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11개월 만에 정기예금에만 172조3627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정기예금에 시중 자금이 대거 몰린 것은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수신금리를 올렸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레고랜드 사태발(發) 자금시장 경색 여파로 지난 10월 말부터 은행채 발행이 막히면서 유일한 자금조달 통로였던 수신상품의 금리를 대폭 올렸다. 이미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대폭 올린 터라 정기예금 금리가 크게 뛰면서 뭉칫돈이 몰렸다는 분석이다.
이날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따르면 5대 은행이 판매중인 정기예금 상품 9개의 평균 금리(12개월 만기 기준)는 연 4.12%로 이미 4%를 돌파했다. 이 중 최고금리는 하나은행의 '하나의정기예금' 상품으로, 최고 연 5%의 금리를 제공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지난 두 번의 빅스텝(기준금리 한번에 0.5%p 인상) 이후 일부 은행에서 예금금리를 1%p 가까이 올리면서 시중자금을 많이 빨아들였다"며 "당국이 금리경쟁 자제령을 내리긴 했지만 이미 금리수준이 높게 형성돼 있어 당분간 예금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고객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이자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정기예금과 달리 '공짜 예금'으로 불리는 저원가성 예금에서는 자금이 대규모로 빠져나가고 있다.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요구불예금(MMDA 포함) 잔액은 623조2405억원으로 전월(641조8091억원)보다 18조5686억원 줄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11개월 만에 요구불예금에서 88조5626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요구불예금은 금리가 0%에 가까워 이자수익을 얻기보단 월급통장 등 잠시 돈을 예치해두는 용도로 사용된다. 은행 입장에서는 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이자비용이 적어 조달비용을 낮출 수 있는 만큼 마진에 유리하다. 그러나 요구불예금이 대거 빠져나가고 고금리 예금이 크게 늘면서 수익성 악화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계대출이 11개월 연속 역성장한 것도 은행권에 우려되는 대목이다. 기업대출이 대폭 늘면서 가계대출 역성장에 따른 수익 악화를 만회했지만, 핵심 수익원인 가계대출이 매월 줄고 있는 상황 자체가 이례적이어서다.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가계대출 잔액은 693조346억원으로 전월(693조6475억원) 대비 6129억원 감소했다. 가계대출 잔액은 올해 들어 11개월 연속 내리막길이다. 지난해 12월 말 잔액(709조529억원)과 비교하면 11개월 만에 16조183억원 줄었다.
그 중 신용대출의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5대 은행의 지난달 신용대출 잔액은 121조5888억원으로 전월(123조6299억원) 대비 2조411억원 줄었다. 올해 전체로 보면 17조9684억원이 신용대출에서 빠져나갔다. 대출금리가 급등한 가운데 상대적으로 갚기 쉬운 신용대출부터 빠른 속도로 상환되고 있다고 업계는 설명한다.
줄어든 가계대출은 기업대출이 만회했다. 지난달 말 5대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710조4214억원으로 전월(704조6673억원)보다 5조7541억원 늘었다. 자금시장 경색 등으로 회사채 발행이 막힌 기업들이 은행 대출로 눈을 돌렸고, 은행들도 기업고객을 적극 유치하면서 기업대출이 증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다른 은행 관계자는 "예대마진으로 돈을 버는 은행에서 대출이 역성장한다는 것은 수익에 치명적"이라며 "은행들도 당분간 수요가 많은 기업대출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