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만에 배당축소 '이례적'···금융당국 압박 작용한 듯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금융권 돈잔치로 대표되는 고액 현금배당을 두고 금융당국의 쓴소리가 이어지면서 금융지주 계열사들이 배당규모를 기존 계획보다 축소하고 있다. 실적 하락, 유동성 위기 등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금융지주사들이 계열사로부터 대규모 배당액을 챙겨가는 것을 두고 논란이 지속되자 입장을 선회하는 모양새다.
KB증권은 지난해 연말 기준 1주당 669원(결산배당)을 배당하려던 계획을 수정, 1주당 334원의 현금배당을 진행한다고 지난 6일 오후 정정공시를 통해 밝혔다. KB증권은 KB금융지주가 전액 출자한 자회사로, 배당금 전액은 KB금융지주에 흘러간다.
앞서 KB증권은 지난달 7일 1주당 669원, 총 2000억원을 배당한다고 공시했으나 한 달 만에 배당액을 축소하기로 한 것이다. 총 배당액도 기존 20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축소됐다.
KB금융 측은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경영 환경에 보수적으로 대비하고자 배당 축소를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KB금융 관계자는 "불확실한 경제 상황을 고려해 계열사 이사회가 자율적으로 결정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한 달 만에 배당규모를 축소한 이례적인 일을 두고 고액배당에 대한 금융당국의 압박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6일 업무계획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배당을 많이 하려면 위험가중자산 비중을 낮춰야 하므로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중·저신용자에 대한 신용공여가 불가능해진다"며 "중장기적으로 금융회사의 성장과 관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발(發) 유동성 위기에 대비해야 하는 증권사들이 모회사인 금융지주사를 위해 배당을 확대하는 것을 두고 불편한 심경을 숨기지 않기도 했다. 이 원장은 지난 1월 31일 금감원 임원회의에서 "부동산 PF 및 단기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일부 증권사는 임직원의 성과급 지급과 현금 배당 등에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은행에서 시작된 돈잔치 비판이 보험, 증권, 카드 등 전 금융권 성과급과 배당구조를 뜯어보는 상황으로 이어진 가운데 KB증권이 기존의 배당계획을 유지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시각이다.
실제 KB증권의 기존 배당계획 2000억원은 지난해 연간 당기순이익 2133억원과 비슷한 수준이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주식시장 부진 영향으로 순이익이 전년 대비 64.46% 줄었고, 그룹 순익 기여도도 2021년 13%대에서 지난해 4%대로 하락한 상황에서 배당규모는 전년도 수준(1주당 669원)을 그대로 유지했다. 더구나 KB증권은 지난해 10월에도 중간배당으로 1주당 669원, 총 2000억원을 지주에 지급했다.
KB증권의 배당 축소가 금융권에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고액배당을 결정한 다른 금융지주사 계열사들도 당국의 눈총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면서다.
하나증권은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75.1% 감소한 상황에서 오히려 배당규모를 늘린 경우다. 하나증권은 지난해 연말 기준 결산배당으로 1주당 248.66원, 총 200억원을 하나금융지주에 배당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8월 중간배당 300억원(1주당 372.98원)까지 합치면 지난해 총 배당규모는 500억원으로, 전년(300억원)보다 200억원 더 늘었다. 이는 지난해 연간 당기순이익 1260억원의 40%에 달하는 규모다. 하나증권은 하나금융지주의 100% 자회사로, 하나금융에서 배당금 전액을 수령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연히 경기 상황도 고려했겠지만 예년과 비교해 특별히 재무상황이 크게 악화된 게 아닌데도 갑자기 배당계획을 축소했다면 당국 눈치를 봤을 가능성이 크다"며 "금융지주사들이 배당확대 기조를 이어가려면 계열사들이 배당으로 뒷받침해줘야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배당을 축소했다면 사실 당국 눈치를 본 것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