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재' 해피엔딩 없어···사회구조·인식 개선 통한 재발 방지 필요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영화의 역사에서 복수극은 아주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보통 이런 문장을 쓸 때는 '존재해왔다'보다 '사랑받아왔다'라는 표현이 적합하겠지만, 복수극은 '사랑'받은 장르는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이는 소수의 매니아들이 선호한 'B급 장르'다. '최초의 복수극'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라질 수 있지만, 오늘날 만들어지는 복수극의 대표작은 메어 자르치의 1978년 영화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다.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시골마을로 간 도시 여성이 현지 청년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죽을 위기에서 살아난 다음 잔인하게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가 저예산으로 단기간에 만들어지며 성적이고 폭력적인 영화들을 말한다. 사실상 '음지(陰地)의 영화'인 셈이다.
다만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가 모두 음지의 영화인 것은 아니다. 1979년 조지 밀러가 만든 저예산 영화 '매드맥스'는 총 제작비 35만 달러로 글로벌 1억 달러 가까이 벌어들였다. 이후 이 시리즈는 3편까지 나왔고 2015년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와 최근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로 다시 태어났다. 1979년 만들어진 첫 '매드맥스'도 가족을 잃은 남자의 복수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최근 개봉한 '퓨리오사' 역시 1편 속 복수극의 구조를 계승하고 있다.
이 밖에 1972년 영화 '왼편 마지막 집'도 복수극 영화의 대표작이다. 살인범 일당에게 딸을 잃은 부모가 복수를 계획한다는 내용이다. 또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는 아니지만, 찰스 브론슨 주연의 1974년 영화 '데스 위시'도 아내를 잃은 남자의 복수를 다루고 있다.
복수극은 강렬한 카타르시스와 허무함을 동시에 준다.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는 가족을 잃고 노예가 된 대장군이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복수에 성공한 영광을 누리지 못한다. 복수에 성공해도 가족은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드보이'는 15년동안 갇힌 남자와 가둔 남자 모두가 복수로 얽혀있다. 그런데 그들 중 누구도 복수한 이후에 영광을 누리지 못한다. '복수는 나의 것'이나 '친절한 금자씨' 등 소위 '박찬욱의 복수 3부작'이라고 불리는 영화들도 모두 이런 결말이다. 복수는 성공하지만, 주인공은 허망하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은 복수에 성공하지만, 행복한 학창시절은 먼지처럼 사라져 다시 누릴 수는 없다. '매드맥스'나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모두 악당들은 잔인하게 복수 당하며 죗값을 치렀지만, 복수한 당사자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복수극이 사랑받는 것은 나쁜 짓을 저지른 악당이 잔혹하게 복수 당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인해 영화는 관객에게 한줌의 정의를 선사한다. 뉴스 사회면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정의구현'을 영화, 드라마에서 찾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정의롭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수진 감독의 2014년 영화 '한공주'는 정의롭지 않은 세상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쁜 놈들은 여전히 어깨를 펴고 다니고 피해자들은 그늘 속으로 숨게 된다.
시스템은 다수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그래서 소수의 안녕을 위해 다수의 이익을 희생하는 일을 사람들은 바라지 않는다. '한공주'의 배경이 되는 밀양 성폭행 사건도 지역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들이 사건을 피해자의 잘못으로 몰아가면서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사회가 개인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다. 보통 이럴 때 복수극은 고개를 든다.
복수극에서 주인공의 결말은 대체로 허망하다. '매드맥스' 1편에서 복수를 마친 맥스(멜 깁슨)의 표정은 허망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서도 복수에 성공한 주인공의 표정은 공허하다. '올드보이'와 '글래디에이터' 모두 복수 뒤에 남아있는 공허를 그대로 보여준다.
악인이 그에 맞는 벌을 받길 바라는 것은 온전한 윤리와 도덕을 가진 인간이라면 당연히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때 좌절하고 분노하게 된다. 뉴스 사회면에는 악인이 제대로 죗값을 치르지 않는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더욱 복수극을 찾게 되고 그런 복수가 현실에서도 일어나길 바라게 된다.
사적 제재로 복수가 이뤄지고 나면 사람들은 후련함을 느낀다. 밀양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들 중 신상이 공개된 몇 명이 직장을 잃었다는 소식에 대중들은 후련함을 느꼈다. 그런데 피해자도 똑같은 후련함을 느꼈을까?
모든 신상공개가 끝나고 가해자들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피해자가 짓게 될 표정은 상상만 해도 두렵고 죄송스럽다. 이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가해자의 신상공개가 피해자의 동의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공식입장을 냈다. 이는 적어도 이 복수극의 결말이 해피엔딩은 아니라는 의미다. 애초에 어떤 복수극도 주인공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은 없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서조차 문동은(송혜교)은 모든 복수를 마치고 죽으려고 했다.
진정 피해자를 위하는 '완벽한 복수'는 더 이상 똑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 시스템을 개선하고 집단이 개인의 인권을 짓밟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 마련과 인식 개선을 해야 한다.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심지어 통쾌하지도 않은 길이지만,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가야 하는 길이다. 근원적 시스템과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밀양 사건'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