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후 10개월만에 개방···시설 입구엔 아직 '외부인 출입 통제' 표시
개방 약속 지킨 사례 많지 않아···건축 혜택받고도 '펜스' 두룬 강남 단지들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도 '스카이브릿지' 공공 개방 서울시 요청에 설치 포기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한강변 초고가 아파트인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가 최근 단지 일부 시설을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지난해 8월 준공한 이곳은 2017년 재건축 특별건축구역 지정 때 당시 건물 높이의 80%로 제한돼 있는 동 간 거리를 52.8%까지 좁히고, 그만큼 가구 수를 늘려 수익성을 키울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받았다. 이러한 혜택을 받는 조건으로 13개의 커뮤니티 시설을 외부에 개방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24일 기자가 방문한 원베일리에는 단지로 들어가는 입구 네 곳에 '공공보행통로'라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었다.
공공보행통로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내 입주민이 아닌 일반인도 다닐 수 있도록 24시간 개방된 통로다. 일반적으로 정비사업 지구단위계획에 이를 포함해야만 지자체들은 승인을 내주고 있다. 없었던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시민들이 기존 5분이면 가던 길을 10분씩 돌아가는 불편함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일반인이 이 단지에서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 시설에는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스카이 커뮤니티'가 포함된다. 총 두 곳으로 각각 9층, 11층에 위치한다.
스카이 커뮤니티로 가는 길목까지 검은 옷을 입은 보안 요원들이 단지를 순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단지 조경 등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묻자 주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입주민·외부인 구분 없이 아파트 세대 전경이 나오는 사진은 찍지 않도록 요청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공공에 개방된지 한달이 넘었지만 아직 스카이 커뮤니티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차단봉 통제 벨트와 함께 '단지 내부는 사유공간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며, 위반 시 형사상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쓰인 표지판이 서 있었다. 시설 관계자는 "스카이 커뮤니티로 올라가는 통로 내 입주민 전용 시설도 있어 세워둔 것"이라며 "입주민들이 어느 정도 공공 개방에 익숙해지면 치워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스카이 커뮤니티에 올라가니 탁트인 한강 전망이 눈에 잘 들어왔다. 이를 보며 앉아서 쉴 수 있도록 벤치와 테이블 등이 마련돼 있었다. 또 바로 옆에는 '카페 스카이'가 있다. 외부인도 이용가능하며 음료 가격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기준 5500원부터 시작했다. 입주민은 할인율이 별도로 적용되는데, 문의 결과 개방 한달간 이곳 이용객의 절반 이상은 외부인이었다고 했다.
스카이 커뮤니티 외 시설은 아직 활성화 되지 않아 이용객이 많지 않은 상태다.
단지에서 만난 입주민 A씨는 "처음에는 공공 개방에 대해 걱정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른 여타 강남 아파트처럼 펜스 둘러친 아파트가 아니라는 것에 자부심도 든다"며 "개방됐지만 입주민과 공용으로 사용하는 공간들이 조용하고 깨끗하게 유지됐으면 한다"고 했다.
외부인 출입 통제는 아파트 단지 입주민 사이에서 민감한 이슈로 작용한다. 외부인으로 인한 단지 시설물 훼손 등이 아파트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최근 강남지역의 신축 아파트 단지에선 외부인 출입 방지를 위한 펜스를 설치도 빈번한 모습이다.
앞서 원베일리도 지난해 8월 입주를 시작했음에도 시설 관리 위탁업체 선정을 못했다며 반년이상 공공 시설 개방을 미루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개방을 앞두고 지난 5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입주민 대상으로 진행한 아파트 펜스 설치 찬반 의견조사에서도 '설치 찬성'이 73% 비율을 차지했다.
최근까지도 일반 대중이 아니라 서초구민에게만 개방하자는 의견이 입주민들 사이에서 나오며 서초구와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다 서초구가 지난달 13일 소유권 이전고시를 취소해 각종 담보대출 등이 어려워지는 상황에 처하자 커뮤니티 시설을 원래대로 개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현재 강남 지역에서 원베일리처럼 개방 약속을 지킨 사례는 흔하지 않다.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와 바로 옆 개포레미안블레스티지 등도 일반인이 통행할 수 있는 개방형 단지로 조성하기로 계획을 짜서 인허가를 받았으나 입주 후 철제 울타리를 둘러 일반인 통행을 막고 있다.
2016년 준공한 서초구 아크로리버파크도 공공 개방하기로 했던 스카이라운지를 입주민만 이용할 수 있도록 변경했다가 입주 1년 8개월이 지나서야 해당 시설을 개방했다. 이 아파트는 공공 개방의 대가로 당시 규정보다 3층 높인 38층까지 건물을 올렸고, 동 간 거리도 법정 기준의 64%까지 좁힐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받은 상태였다.
앞으로도 공공보행통로 설치 및 커뮤니티 공공 개방을 둘러싼 이 같은 갈등은 압구정, 한남, 성수, 잠실 등 재건축을 앞둔 한강변 단지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한 정비업계 전문가는 "서울시가 스카이브릿지를 설치하는 조건으로 해당 시설 공공개방 요구하는 추세"라며 "최근 잠실주공 5단지 재건축 역시 시가 해당 시설을 공공시설로 개방해야한다고 제동을 걸어 최근 조합이 스카이브릿지 2곳 설치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