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통제 관리 부담 확대···연말 인사에도 영향 불가피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국내 주요 은행들이 모두 이달 말까지 책무구조도 조기 제출을 마치고 시범 운영에 돌입한다. 금융회사 경영진에 대한 내부통제 책임·의무가 강화되는 책무구조도가 다음달부터 본격 적용될 것으로 보이면서 업계 긴장감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5대 금융지주와 5대 은행은 책무구조도를 시범운영 신청 기한인 이달 31일까지 모두 제출할 예정이다. 시중은행들 가운데선 신한은행이 지난달 가장 먼저 제출했고 하나은행도 이달 제출을 마쳤다. 올해 5월 시중은행으로 전환한 iM뱅크(옛 DGB대구은행)도 지주사인 DGB금융과 함께 일찍이 책무구조도를 제출했다.
KB국민·우리·NH농협은행과 각 지주사들도 이번주 중 책무구조도 제출하고 시범운영에 돌입한다. 이를 위해 KB금융 이사회는 지난 24일 책무구조도를 의결했고 국민은행은 지난달 책무관리 업무 총괄 전담 조직인 'KB책무관리실'을 신설했다. 우리금융도 18일 이사회에서 책무구조도를 의결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회사 CEO 및 임원이 담당하는 직책별 책무를 지정한 문서다. 횡령, 부당대출 등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역할을 한다. 사고가 발생한 후 특정 부문에서 내부통제가 미흡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 책무구조도는 해당 부문을 책임지는 임원을 징계하는 근거가 된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에 따라 은행 및 금융지주사들은 내년 1월 2일까지 의무적으로 책무구조도를 제출해야 했다. 그러나 처음 도입되는 제도인 만큼 계도기간을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금융당국은 이달 말까지 책무구조도를 조기 제출하는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11월부터 2개월간 시범운영에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시범운영 기간 동안에는 금융사고가 발생,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위반하는 일이 있더라도 제재를 경감해주는 인센티브가 부여된다. 또 내부통제가 완벽하게 수행되지 않더라도 지배구조법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앞서 금융당국이 시범기간을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지난 7월 밝힌 이후 은행 및 금융지주사들은 책무구조도 제출 시기 등을 놓고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여왔다. 잇단 금융사고에 금융당국이 내부통제 관리 강화를 주문한 만큼 책무구조도를 조기 제출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으나, 제출기한에 맞춰 최대한 늦게 내는 것이 유리하지 않겠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일찍 제출했다가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지게 될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신한금융 계열사인 신한투자증권의 경우 금융투자업계 최초로 책무구조도를 도입하는 등 내부통제에 자신감을 보여왔으나 이달 초 1357억원 규모의 파생상품 손실 사태가 발생하면서, 오히려 시스템이 촘촘하게 관리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게 됐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책무구조도를 제출하기 전 발생한 사고라면 사고 난 부분을 반영해서 책무구조도를 더 공고히 하겠다고 얘기라도 할 수 있겠는데, 제출한 이후에 발생한 사고라면 결국 그 책무구조도 자체에 구멍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된다"며 "일찍 제출하는 데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이달 주요 금융회사들의 책무구조도 제출이 완료되는 가운데 연말연초 예정된 CEO·임원 인사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책무구조도 도입에 따라 금융회사 경영진의 리스크 관리 책임·의무가 강화되는 만큼 인사에 보다 신중을 기울일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에선 내부통제를 보다 촘촘하게 관리하기 위해 담당 임원의 수를 늘리는 방안도 조심스럽게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