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보증' 책임준공형 늘린 탓···67개 사업장 영향
신보 'P-CBO 프로그램'에 부동산 신탁사도 포함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무리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으로 건전성이 악화된 무궁화신탁이 금융당국으로부터 경영개선명령을 받았다. 무궁화신탁은 부동산신탁업계 6위권 회사로, '연대보증' 성격의 리스크가 큰 책임준공확약 사업장을 무분별하게 늘렸던 게 건전성 악화의 원인이 됐다.
금융위원회는 27일 오후 정례회의를 열고 무궁화신탁에 대한 경영개선명령 부과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경영개선명령은 재무건전성이 악화해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금융회사에 금융당국이 내리는 적기시정조치 중 가장 높은 수위의 경고조치다. 9월 말 기준 무궁화신탁의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은 69%를 기록, 경영개선명령 기준이 100%에 미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무궁화신탁은 지난 2020년 부동산 호황기 때 책임준공확약 사업장을 대규모로 늘렸다가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PF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은 신탁사가 자금력이 부족한 시공사를 대신해 책임준공 확약을 제공하고 금융사로부터 PF대출을 받는 연대 보증적 성격을 지닌다. 리스크가 크지만 일반 관리형 토지신탁보다 수수료가 10배가량 높다. 무궁화신탁도 PF수수료를 늘리고자 무리하게 책임준공형 사업장을 확장했다가, 유동성 위기에 몰렸고 빠른 속도로 건전성이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무궁화신탁은 2022년 하반기 이후 금융당국의 부동산신탁사 모니터링 및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가장 취약도가 높은 신탁사로 분류돼왔다.
이번 경영개선명령으로 무궁화신탁은 유상증자·자회사 매각 등 자체 정상화를 추진하거나 합병, 금융지주사 자회사 편입 등 제3자 매각을 진행해야 한다. 아울러 이같은 내용이 담긴 경영개선계획을 내년 1월 24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무궁화신탁의 대주주가 자본력이 많지 않은 개인인 점, 자회사 매각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자체적인 정상화보다는 제3자 매각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날 관련 브리핑을 진행한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은 "무궁화신탁으로부터 자회사 정리 계획을 사전에 받았는데, 일부 매각 주관사 자체가 선정이 안 돼 있는 등 매각이 단기간 내 일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고 자체 증자도 어려울 것으로 보여 제3자 매각쪽으로 무게를 두고 있다"며 "부동산 신탁사에 대한 잠재적인 수요가 지주 계열사들에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부동산신탁사의 고유계정과 신탁재산이 도산절연돼 있는 만큼 무궁화신탁이 경영정상화 조치에 들어가더라도 신탁사업으로 추진된 PF사업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무궁화신탁이 추진하는 대부분의 신탁사업의 경우 이해당사자의 별도 의사결정이 없는 한 기존과 동일하게 진행·유지될 수 있다.
현재 무궁화신탁 고유계정 정상화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PF사업장은 총 67개로 차입형 32개, 책임준공형 35개다. 사업성과 공사 진행도가 양호한 사업장은 자체적으로 기존 사업을 계속 진행·완공하되, 일부 미착공 등 사업장의 경우 대주단과 토지소유자, 원시행사, 시공사가 협의해 △진행 유지 △신탁사 교체 △재구조화·정리 등을 추진할 수 있도록 했다.
무궁화신탁이 공사 중인 사업장 중 분양이 진행돼 분양계약자가 있는 사업장은 26개, 1378호다. 이 중 5개 사업장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에 가입돼 있거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 매입약정이 있는 상태다. 다른 21곳도 사업장별로 계속 공사·완공이 추진되거나 관련 법리와 신탁재산 책임 범위 내에서 분양계약자의 권리가 최대한 보호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시공사 및 협력업체 지원 방안도 시행한다. 무궁화신탁이 공사 중인 차입형 및 책임준공형(관리형) 사업장(42개) 관련 시공사는 39개사, 협력업체(하도급사)는 325개사다. 이 중 협력업체가 체결한 415건의 하도급 계약 중 139건(33%)은 하도급대금 지급보증이 가입돼 보증기관을 통해 대금을 받을 수 있다.
금융당국은 신탁사가 직접 사업비를 조달하는 차입형 토지신탁 사업에서 일시적 유동성 부족이 나타날 경우 원도급사 및 협력업체에 금융권 신속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할 계획이다. 채권은행 공동으로 해당 중소기업에 만기연장·상환유예·금리인하 등을 신속히 결정·지원할 방침이다.
채권·단기자금시장 불안 가능성에도 선제 조치한다. 관련해 다음달부터 저신용 기업들의 시장성 자금 조달을 지원하는 프라이머리채권담보부증권(P-CBO) 프로그램에 부동산 신탁사를 포함하기로 했다. 이번 적기시정조치로 부동산신탁사 위험 회피가 심화하면서 정상적인 부동산 신탁사들까지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이다.
권 사무처장은 "적기시정조치는 금융회사가 일시적으로 연체율이 높아진다든지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든지 하면 더 나빠지기 전에 감독당국이 정상화를 유도한다는 취지로 보면 된다"며 "이번 조치도 크게 2022년부터 정부가 추진해온 '부동산PF의 질서 있는 연착륙' 범위 내에서 부실의 정리 과정이라고 이해해달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