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관심없어 보이던 MZ세대 젊은이들이 어처구니없었던 12.3 비상계엄에 경악해 대통령 탄핵을 외치며 국회의사당 앞으로 모여들고 있다. 그들이 참여한 집회는 단순한 정치집회가 아니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의지와 더불어 한국을 불안하게 지켜보는 국제사회의 시선까지 바꾸고 있다.
덕분에 계엄령 발동 직후 삽시간에 140조의 국부가 날아갈 만큼 한국을 위태롭게 바라보던 국제사회가 한국에 대한 평가하향 작업을 잠시 멈추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7일 있었던 국회의 탄핵결의가 무산되고 기성세대들이 절망할 때 이 젊은이들은 ‘우리는 이제 시작이다’라고 씩씩하게 외치며 어깨처진 기성세대들의 기운까지 북돋아 줬다.
8년 전에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섰지만 이 젊은이들은 바람에도 꺼지지 않을 형형색색의 라이트스틱을 들고 나왔다.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여러 아이돌들의 응원봉을 들고 나와 그들에게 익숙한 K팝들을 함께 떼창하며 연대의 기쁨을 나누고 탄핵을 외친다.
뿐만 아니다. 짤이니 밈이니 하는 기성세대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그들의 문화로 심각한 상황을 재치와 해학 넘치는 축제의 장으로 바꾸었다.
천하제일 깃발대회라는 기치 아래 '우리나라 정상영업합니다', '제발 아무것도 안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내향인', '전국 수족냉증협회', '방구석 게임 매니아협회', '전국 뒤로 미루기연합'에 더해 '눈사람 안아주기 운동본부', '강아지 발냄새 연구회', '푸바오의 행복을 바라는 모임', '전국 계란은 완숙 협회', '전국 삼각김밥 미식가 협회' 등 보고 있는 것만으로 저절로 웃음짓게 하는 재미있는 밈을 담은 갖가지 깃발들이 집회장에 나부낀다.
K팝 음악만이 아니라 국민체조 음악에 탄핵 요구 가사를 얹고 율동까지 함께 한다.
이런 발랄한 젊은이들 덕분에 추운 날씨에도 집회장에는 그야말로 구름떼처럼 많은 인파가 모여 질서 있게 집회를 이어나간다.
이런 시민들의 적극적인 집회는 후진국에서나 볼 법한 평시 계엄령에 놀라 한국에서 한발 빼려던 외국 자본들도 일단 관망하게 만들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강하다는 믿음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MZ세대의 힘은 시위대에서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계엄령이 발동된 그 밤, 영문도 모른채 국회로 투입됐던 MZ세대 병사들에게서도 민주 시민의 성숙한 의식이 발견되었다.
쿠데타에 적극 참여한 소수 장성급들은 몰라도 현장 투입된 젊은 병사들은 도착해서야 뒤늦게 알게 된 상황에 마지못해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 최정예 부대원들이지만 빠르게 명령을 이행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대신 되도록 느릿하게 행동함으로써 국회의사당에서 당일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이 통과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계엄령이라는 것은 그저 지나간 역사인줄만 알았던 MZ세대들에게는 그나마 올해 상반기에 나왔던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계엄령의 실체를 깨달았을 뿐이었다. 그런 불행한 역사가 자신들의 시대에 다시 등장했다는 사실에 경악한 젊은이들은 SNS를 통해 함께 할 사람들을 모아가며 스스로 탄핵집회장으로 나온 것이다.
이들이 함께 하는 집회 현장의 분위기를 외신들은 콘서트장 같다거나 축제같다는 표현으로 세계에 전파시키고 있다. 한국 거주 외국인들 역시 이런 집회문화를 SNS를 통해 주변에 알리고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과 사진을 올리며 소식을 퍼트리고 있다.
덕분에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단계에서 계엄령이라는 찬물을 뒤집어쓰며 명운이 위태롭던 한류문화도 다시 불씨를 키우고 있다. 다른 어느 분야보다 민주주의의 힘을 강하게 받는 문화 분야에서 계엄령은 그야말로 재앙이었지만 MZ세대의 재치와 흥, 멋과 끼가 넘치는 집회문화로 인해 오히려 한국의 민주주의는 믿음을 얻었고 한국에 대한 평가도 추락에 더 이상 가속도가 붙는 것을 방지했다.
탄핵집회 현장에 MZ세대의 출현은 기성세대들에게는 미안함과 감사함이라는 양가감정이 교차하는 일이지만 공정과 평화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이 젊은 세대들에게 군을 국회의사당에 진입시킨 계엄령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계엄령 발동의 명분을 얻기 위해 북한을 도발, 전쟁위험을 고조시킨 부분은 군 입대 전후의 젊은 세대에겐 더 없이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을까 싶다. 일단 젊은 세대의 가슴에 지펴진 불씨는 결코 꺼지지 않는다는 것도 역사가 가르쳐준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