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견제 따른 韓 반도체 반사이익 기대···파운드리 변화 예고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지난해 불황을 지나 올해 회복세를 보인 반도체 시장은 내년에 큰 불확실성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때문이다. 트럼프는 내년 1월 20일 미국 제 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올해 선거운동 과정에서부터 관세를 강조해왔다.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지원에 대해 "단 10센트의 보조금도 줄 필요가 없었다"며 "관세를 높이면 외국 기업들은 알아서 미국으로 와서 반도체 공장을 지을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특히 트럼프는 중국에 대해 최대 60%의 관세를 부과하고 한국과 대만 등에도 10~2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지난 8월 SK하이닉스의 미국 인디애나주 HBM 공장에 대해 4억5000만달러(약 62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상무부는 또 지난 4월 삼성전자의 미국 테일러 공장 2곳과 첨단 패키징 R&D 센터에는 64억달러(약 8조80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키로 했다. 이 밖에 대만 TSMC는 지난달 미국 애리조나 공장을 완공하고 66억달러(약 9조2000억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그러나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배터리 세액공제 제도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해 폐지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반도체지원법(CHIPS Act)도 폐지 기로에 설 것으로 보인다.
◇ 트럼프 행정부, 내년 반도체지원법 폐지하나 = 보조금 지원 철회와 관세 부과가 현실화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의 미국 투자 확대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패트릭 무어헤드 무어인사이트앤스트래티지 CEO는 18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미국 내 생산 확대는 트럼프의 관세 위협에 대응하는 중요한 전략"이라고 전했다.
이어 "애플, 델 등 반도체 위탁생산을 하는 미국 기업들이 반도체를 미국에서 생산하도록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반도체 가격 상승과 이에 따른 제품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트럼프의 관세 압박 때문에 글로벌 공급망의 혼선과 반도체 지형도의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파운드리 점유율 1위인 대만 TSMC와 2위인 삼성전자는 계산이 복잡해질 전망이다.
IT전문매체 WCCF테크는 지난달 대만 정부가 자국의 독점기술 보호를 명목으로 TSMC의 2나노 칩을 해외에서 생산할 수 없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지난 7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대만이 우리의 칩 사업을 뺏었다. 그들은 현재 엄청나게 부유하다"고 발언한 것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궈지후이 대만 경제부 장관은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대만이 미국에서 칩 산업을 훔치는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가 만든 칩은 가장 높은 매출 마진을 가진 미국 회사에서 의뢰한 것이다. 트럼프가 이에 대해 조금 오해했을 수 있다. 이를 명확하게 설명할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만약 TSMC가 미국 내에서 2나노 칩을 생산하지 못할 경우 테일러 공장의 2나노 전환을 추진하는 삼성전자는 미국 빅테크를 상대로 가격 경쟁력을 내세울 수 있다. 다만 최근 업계에서는 대만 정부와 TSMC와 트럼프의 관세 압박에 대응해 미국 내 2나노 칩 생산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파운드리 영향력 커진 TSMC···정체된 삼성전자 = 한편 전세계 파운드리 시장은 TSMC가 6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한 독무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19년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2030년까지 글로벌 1위에 오르겠다는 '비전 2030' 계획을 밝혔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 133조원을 투자하겠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파운드리 점유율은 2019년 대비 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올해 3분기 기준 TSMC가 64%, 삼성전자가 12%를 차지하고 있다. 종합반도체기업(IDM)인 삼성전자가 고객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파운드리 장기 침체에 빠진 가운데 업계에서는 인텔과 같은 파운드리 분사 의견을 내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사를 선택하는 대신 조직을 간소화하고 체질 개선을 모색해 고객사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TSMC는 지난달 미국 상무부로부터 7나노 이하 칩을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재를 받았다. 이는 중국을 겨냥한 조치지만, 중국 IT기업을 대상으로 고객사 확보를 모색하는 TSMC에게는 다소 타격이 될 수 있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미국은 수출 통제 조치를 남용하고 중국에 일방적 '따돌림'을 가하고 있다"며 수출통제 조치 철회를 요구했다. 이 때문에 내년에 TSMC를 두고 미·중간 무역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 이 같은 조치로 향후 삼성전자가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