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트럼프의 신제국주의 선언
[홍승희 칼럼] 트럼프의 신제국주의 선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취임하자마자 파나마 운하를 되찾겠다거나 그린란드를 사겠다는 말을 할 때까지만 해도 트럼프 미 대통령의 행보는 단순히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행동으로 이해됐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가자지구를 미국이 갖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이미 미국의 영향력은 전 세계에 미치고 있지만 트럼프의 미국은 결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미국이 좀더 직접적으로 다스리기를 원하는 지역들이 늘어가고 있다.

물론 새로운 형태의 땅따먹기는 중국이 먼저 시작했다. 역대 중국 정부가 청나라 시절의 영토를 기준으로 영토 확장 정책을 꾸준히 펼쳐왔지만 시진핑의 중국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주변 영토 외에도 일대일로를 내세워 유럽 일부와 아프리카까지, 또 중남미까지 그 발자국을 남기는 일에 거침이 없다. 단순히 교역을 확대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넓히는 수준을 넘어서 상대국의 주요 거점지역을 100년씩 장기 할양받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해가며 세계여론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요즘 시진핑의 중국은 19세기 중반 유럽 여러 나라의 제국주의적 침탈과정에서 청나라가 열강에 당한 수법을 고스란히 세계에 투사하는 양상이다. 심지어 최근 미국을 골병들게 하는 신종마약 펜타닐을 다양한 루트로 미국에 침투시키고 있다는 미국 정보기관들의 보고가 잇따랐다. 1840년, 1856년 두 차례에 걸쳐야 했던 아편전쟁을 같은 방식으로 되갚아주려는 것인가 싶다.

물론 지금도 중국이 미국과 전면전을 치를 형편은 아니고 또 그렇게까지 끌고 갈 뜻은 없는 것 같지만 마치 '너희도 똑같이 당해봐라' 하는 식의 되갚음을 떠올리게 한다. 마약이 확산되면 그 사회가 어떻게 허약해지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중국이 자국내 마약범들에게 가혹할 정도의 처벌을 내리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중국산 마약이 미국 해안으로 직접 투입되는 것 뿐만 아니라 캐나다, 멕시코 등 인접국을 통해 대량으로 반입되는 모습은 다분히 역사적 보복으로 보인다.

중국이 이처럼 19세기에 이미 선보였던 제국주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에 반해 미국의 방식은 조금은 새로운, 그러나 과거 유럽열강들의 방식과 흡사하게 꽤 폭력적인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그간 동맹국 시스템으로 비교적 평화로운 방식을 통해 큰형님 노릇을 해왔다면 트럼프의 미국은 좀 더 강압적인 군주적 지배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이 제국주의적 색채를 강화함으로써 전세계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양대 패권국 틈바구니에서 줄서기를 강요당하게 된다. 아직은 양국 사이에서 미묘하게 줄타기를 하는 국가들도 머지않아 힘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버티기에는 분명 한계를 보이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국가간 경제적 편차가 커지고 세계적으로 경기가 후퇴하는 상황이 되면 간보기를 잘못하다 양쪽의 동시 공격을 받을 위험성도 커진다. 트럼프의 미국은 이미 실익이 별로 없는 우크라이나는 버리는 패로 여기며 차라리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에 대한 압박강도를 더 높이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파나마운하 건은 하필 양 끝단에 홍콩기업들이 둥지를 트는 바람에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려 미국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형편이다. 적어도 중남미는 자신들의 마당으로 여기는 미국 입장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그림인 것이다.

최근 막대한 자원이 발견된 그린란드는 에너지의 절대우위를 원하는 미국이 강력하게 원하는 먹이이지만 아직 유럽을 무력으로 제압해 먹겠다고 나서기엔 시기상조로 여겨 매입하겠다고 선언을 먼저 해버린 경우다. 그린란드를 소유하고 있는 덴마크 정부로서는 당장은 황당해 하지만 선조치 후협상이라는 트럼프식 부동산개발 방식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트럼프에게 얼마나 버틸지 확신할 수 없다.

그에 비해 가자지구를 미국이 갖겠다는 선언은 그 어느 경우보다 충격적이다. 미국이 갖겠으니 팔레스타인인들은 모두 요르단이 받으라는 그야말로 명분도 없고 전조도 없었던 막무가내식 내지르기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장사꾼이니 협상만 잘 하면 관계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던 기존의 대 트럼프 외교방식에 일대 수정이 필요함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가자지구 건이다. 한국은 국내 정치상황으로 이런 트럼프를 향해 아직 국가적 대응전략을 논의조차 못하고 있어 답답하다.



이 시간 주요 뉴스
저탄소/기후변화
전국/지역경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