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외이사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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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임초롱기자] 주총 시즌이 돌아오면서 대기업 사외이사를 둘러싼 자격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이른바 '거수기'와 '방패막이'라는 꼬리표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재현되고 있다.

특히 이같은 사외이사 자격 논란은 유통재벌들이 주도(?)하는 모습이다. 롯데그룹은 8개 상장 계열사에 총 29명의 사외이사를 두고 있는데, 이 중 69%에 해당하는 20명이 고위 관료 출신이다.

특히 세무·공정위·법조·감사원 등 소위 4대 권력기관 출신은 13명으로, 10대 재벌 그룹 중 가장 많았다. 국세청과 관세청 등 세무 출신이 7명으로 가장 많았고, 검찰청과 법원 등 법조계가 5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앞서 언급한 29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13명은 오는 21일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새롭게 선임될 예정이다. 이사회 추천으로 사외이사 후보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또 사외이사 후보자인 13명 가운데서도 77%에 해당하는 10명이 관료 출신이다. 이는 10대 기업 평균(40%)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특히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정동기 전 대검찰청 차장과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 정병춘 전 국세청 차장 등이 새롭게 이름을 올려 주목받고 있다.

롯데의 유통 맞수인 신세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신세계와 이마트 등 신세계그룹의 7개 상장계열사에는 총 17명의 사외이사가 영입됐는데, 이들 가운데 2명을 제외한 나머지 15명이 모두 고위 관료 출신이다. 비율로 따지면 88%로, 국내 기업 중 최고 비율로 알려졌다.

신세계그룹의 지주사격인 신세계는 손영래 전 국세청장과 손인옥 전 공정위 부위원장, 조근호 전 법무연수원장, 김종신 전 감사원장 직무대행 등 모두 4명의 사외이사를 뒀다. 4대 권력기관 출신이 한 명씩 골고루 포진해 있는 셈이다.

이처럼 롯데와 신세계 등 유통재벌들이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 영입에 공을 들이는 데에는 최근 유통산업에 대한 시장 감시가 강화된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이른바 '방패막이용' 인사다.

공교롭게도 롯데그룹의 지주사 격인 롯데쇼핑은 지난해 7월부터 수개월에 걸쳐 사정당국으로부터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고 650억 원의 추징금을 부과 받았다. 이보다 앞선 2월에는 롯데쇼핑과 양대 축이나 다름없는 호텔롯데에 대한 세무조사를 통해 200억 대의 추징금을 납부했다. 또 올 초 들어서는 롯데홈쇼핑 전직 임원이 납품업체로부터 수억 원 대의 뇌물을 받은 정황이 포착돼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신세계그룹 역시 작년 초부터 노조 불법 사찰 문제로 정용진 부회장이 국정감사에까지 증인으로 출석하는 등의 수난을 겪었다. 아울러 신세계 빵집과 관련한 일감몰아주기, 변종 SSM으로 인한 골목상권 논란에도 휘말려 사정당국의 연이은 수사를 받기도 했다.

업체들도 할 말은 있다. 투명경영을 목적으로 사외이사를 영입하다 보니 해당 분야에서 수십 년을 역임한 고위 관료들이 전문성 측면에서 가장 적합하다는 것. 

그러나 이들 업체의 설명처럼 관료출신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에 대한 비판·감시'라는 본연의 책무를 성실히 수행해 왔는지는 의문이다.

롯데쇼핑의 경우 사외이사의 공식 활동인 이사회를 지난해 16번 개최했는데 모든 안건에 반대표가 나온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신세계도 지난해 15번의 이사회를 열었는데, 모든 안건이 사외이사 전원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사외이사 선임을 놓고 '방패막이' 논란과 함께 '거수기'라는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이사회가 열릴 때마다 1인당 평균 6200만원, 5500만원의 연봉을 챙겼다. 찬성표 한건당 400만원 꼴의 보수를 받는 셈이다.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와 투자자의 이익 보호를 목적으로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는 벌써 시행 16년째다.하지만 지루하게 반복되는 논란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사외이사 제도가 기업과 관료의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의 허울 뿐인 제도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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