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건설사 10곳 중 7곳 수주 '0건'···"사업성 악화···선별 수주"
길음5구역 비롯, 강남·용산 등 유찰···'한남5구역'도 유찰 전망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국내 건설업계에서 이른바 '황금알 낳는 거위'로 통했던 주택 재건축·재개발 사업 수주가 급감하며 올해 실적이 역대 최악을 기록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치솟은 공사비와 시장 침체 탓에 사업성이 악화하며 조합과 시공사 모두 몸을 사리는 추세가 이어지면서다.
20일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1분기 재개발 수주액은 2조630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7% 감소했다. 재건축 수주액의 경우 1분기 전체(2조3575억원)로는 1.8% 증가했으나, 월별로 나눠 보면 점차 줄어드는 모습이다. 1월 재건축 수주액은 전년 동월 대비 44.4% 증가한 반면 2월과 3월은 각각 16.2%, 24.8% 감소했다.
올해 1분기 수주 실적을 공개한 국내 상위 건설사 10곳의 정비사업 수주액은 3조9994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4조5242억원)와 비교해 약 12% 줄었다. 2년 전(6조7786억원)과 비교하면 40% 가까이 감소한 수치다. 특히 상위 10대 건설사 중 삼성물산·대우건설·현대엔지니어링·GS건설 등 7개사는 올해 1분기 정비사업 수주 물량이 '0'건이었다.
포스코이앤씨는 총 2조3321억원 규모로 도시정비 사업을 수주했다. 구체적으로는 △부산 촉진 2-1구역 재개발(1조3274억원) △고양 별빛마을8단지 리모델링(4988억원) △금정역 산본1동 재개발(2821억원) △가락미륭아파트 재건축(2238억원) 등이다.
현대건설은 지난 18일 수주한 인천 부개5구역 재개발(5139억원)을 포함해 여의도 한양아파트(7740억원)와 성남중2구역 재건축(6782억원) 등에서 1조9662억원 규모 사업을 수주했으며, SK에코플랜트는 미아11구역 재개발로 2151억원의 규모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고금리와 치솟는 공사비, 시장 침체 등에 따라 재건축·재개발이 과거와 같은 사업성을 보장하지 못하면서 정비사업 전반이 위축되는 분위기다. 재건축 조합이 제시하는 공사비는 턱없이 낮은데 사업성까지 떨어지자 건설사들의 선별 수주 추세가 이어지며 정비사업에서 발을 빼는 시공사들이 많아졌다. 서울 강남, 용산 등 핵심 입지의 사업지들도 시공사를 찾지 못해 유찰되는 실정이다.
실제 최근 올 상반기 강북 재개발 요충지로 꼽혔던 서울 성북구 길음5구역 재개발사업 시공사 선정 입찰 결과 포스코이앤씨 한 곳만 사업제안서를 제출하면서 유찰됐다. 앞서 지난 3월말 열린 현장설명회에는 현대건설, 대우건설, GS건설 등 총 10개사가 참여했으나 응찰에 나서지 않은 것이다.
지난달 시공사 입찰을 마감한 서초구 신반포27차의 경우는 SK에코플랜트 단독 입찰로 수의계약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첫 입찰은 무응찰됐고 공사비를 인상해 두 번의 입찰을 진행했으나 모두 SK에코플랜트만 단독 참여했다.
인근 신반포12차 역시 롯데건설의 수의계약이 검토되고 있다. 두 차례 진행된 사업설명회 이후 롯데건설이 단독 입찰하면서 재공고를 진행한 상태로, 다른 업체가 참여하지 않으면 롯데의 수주가 유력한 상황이다.
재건축이 활발한 송파 지역에서도 수의계약 추진이 잇따르고 있다. 송파구 '잠실우성4차' 재건축 조합은 시공사 입찰이 잇따라 유찰된 이후 공사비를 인상해 재입찰을 진행했다. 하지만 DL이앤씨만 입찰하면서 수의계약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송파구 '가락삼익맨션' 재건축 역시 현대건설이 단독입찰해 수의계약으로 사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한강변 인근으로 사업성이 높다고 평가 받는 용산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지난달 15일 진행된 용산 한강변의 47년차 재건축 아파트 '산호' 시공사 입찰에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 가운데 서울 용산구 한남뉴타운 내에서도 가장 좋은 입지로 꼽히는 한남5구역도 최근 시공사 선정 절차에 돌입했지만 수주 경쟁 없이 조용히 치러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2020년과 2022년, 한남3구역과 한남2구역에서 펼쳐진 치열한 수주 경쟁은 보기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다.
현재 한남5구역에 관심을 보이는 건설사는 DL이앤씨 한 곳뿐이다. DL이앤씨가 오래전부터 적극적인 수주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 등은 지난해 하반기까지 한남5구역서 홍보 활동을 벌였지만 현재는 인력을 모두 철수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건설 참여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지난 한남2구역 수주 경쟁에서 대우건설에 밀린 만큼 신중히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고금리에 사업 여건이 악화했고, 공사비는 치솟은 가운데 분양 시장 회복도 더딘 만큼 주택 사업의 수익성이 많이 줄었고 공사비 갈등도 격화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회사도 과거 호황기에 무분별한 수주로 사업을 확장하기보단 신중히 사업성 검토를 하고 선별 수주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