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발목잡는 '고용·터키 쇼크'…8월 금리인상 물건너 가나
한은 발목잡는 '고용·터키 쇼크'…8월 금리인상 물건너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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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실기 부담…고민 깊어지는 한은
사진=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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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김희정 기자]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대내외 변수에 발목을 잡힌 모양새다. 터키발(發) 국제금융 불안, 참사 수준의 고용지표에 무게를 두자니 금리를 올리기 어렵고, 갈수록 벌어지는 한국과 미국의 금리격차와 가계부채를 억제하려니 금리를 묶어두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8월 금리인상이 물건너 갔다'는 의견을 줄지어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해를 넘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달말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동결 또는 인상하더라도 그에 따른 부작용과 후과는 오롯이 한은의 몫이다. 금통위를 불과 열흘 앞둔 한은의 장고가 더 깊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한은 금리인상 카드 '만지작' =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31일 열리는 금통위의 기준금리 결정을 놓고 한은은 몇차례 금리인상 깜빡이를 켰다. 우선 이일형 금융통화위원이 금리인상을 주장하는 소수의견을 냈다. 최근 금통위는 소수의견이 나온 뒤 1~2달 뒤에 금리를 변경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 금리인상 때도 이 위원이 10월 인상 소수의견을 낸 뒤 바로 그 다음달(11월) 인상이 이뤄졌다. 

한은은 또 몇몇 보고서를 통해 우회적으로 금리인상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정부 규제를 받아 낮게 유지되는 관리물가를 제외한 2분기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2.2% 상승했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한은의 물가 목표치(연 2%)가 이미 상회했다는 뜻이다. 

한미 금리차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이 오는 9월과 12월 두 차례 더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한은이 연내 금리를 연 1.50%로 유지하면 올해말 한미 금리차는 연 1%p까지 벌어진다. 앞으로 금리차가 점점 벌어져 글로벌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게 되면 국내 금융시장에 자금경색이 올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한국 금융시스템의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꼽히는 가계부채가 1500조원을 육박하고 있다. 정부의 각종 정책으로 가계부채 증가율은 둔화되고 있지만 신용대출이나 전세자금대출, 개인사업자대출은 여전히 빠르게 늘고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말 금리인상에도 가계가 빚을 늘리고 있다는 얘기다. 통화정책 '약발'이 크게 먹히지 않은 셈이다. 

◇고용쇼크·터키發 금융불안 변수 = 하지만 터키발 신흥국 위기설이 재차 점화된 데다 지난 7월 고용지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으로 곤두박질 치면서 8월 금리인상설이 설득력을 상실하고 있다. 

지난주 발표된 고용지표는 '쇼크' 수준이었다. 7월 취업자수 증가폭이 5000명에 그친것으로 나타나면서 8년 6개월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지난 7월 경제전망에서 한은은 올해 연간 취업자수 증가가 18만명에 이를 것으로 봤지만 지난 7월 고용지표 결과를 반영하면 연간 10만명도 넘기 어렵다는 전망이 힘을 얻는다. 

한은의 목표는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지만 고용안정 역시 사실상 주요 정책 목표로 여겨진다. 고용부진은 결국 내수부진과 경기침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성장과 물가지표를 모두 악화시킬 수 있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준금리가 올라 가계의 금융비용까지 커지면 경기가 급격하게 얼어붙어 한은의 운신 폭은 더 좁아진다. 

이에 고용지표가 발표된 17일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내 1회 기준금리 인상을 반영한 하단이었던 연 2.05%를 하향돌파, 전일 대비 0.053%p 하락한 연 1.997%에 장을 마쳤다. 신동주 유진투자 연구원은 "국고채 3년 금리가 최근 1%대로 진입했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의 금리인상 경계감이 완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한국경제의 대내외 불안성을 가중시키는 상황에서 터키발 금융불안이 신흥국 위기설을 재점화 한 것도 부담이다. 앞서 미중 무역분쟁이 해법을 찾지 못하자 파급효과를 지켜보자며 한은은 금리를 묶었다. 돌발적으로 튀어나온 대외 변수가 첩첩이 쌓일 수록 불확실성은 확대된다. 정부와 한은은 터키 위기의 국내 전이 가능성이 낮다고 입을 모았지만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필요하면 환시안정 조치에 나설 수 있다"고 언급하는 등 불안이 더 커질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는 모습이다. 

◇한은 통화정책 실기론까지 대두 =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전문가들은 다음 금리인상 시기를 줄줄이 늦추고 있다. 8월 금리인상 가능성을 점쳤던 전문가들도 고용지표를 확인한 후 4분기 이후로 금리인상 시점을 미루고 있다. 이달 31일 제외하고 올 하반기 기준금리를 정하는 금통위는 10월18일 11월30일 등 두 차례다. 다만 경제 전망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 금리인상 명분 찾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진단이다. 

이미선 부국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7월 고용지표 부진이 이달 금리인상 가능성을 약화 시키고 있다. 이달 금통위는 한미 금리역전차 확대 보다 국내 경기 요인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과 다른 지역과의 무역갈등이 불거지고 있어 무역분쟁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 한 금리인상 과정은 더딜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지나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새로운 관전 포인트는 고용 부진에 대한 한은의 해석"이라며 "만약 8월 금통위 기자회견을 통해 한은이 고용 부진에 대해 일시적인 현상, 내지는 잠재성장률 하락에 따른 구조적인 현상으로 해석할 경우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은의 통화정책 실기론을 탓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시차가 6개월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선제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는데 적정한 금리인상 타이밍을 놓쳐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을 한은 스스로 초래 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제 금통위는 금리인상 시기를 저울질 하기보다는 경기를 살릴 묘수를 찾는 데 더 힘써야 한다"며 "통화정책 실기에 따른 고통은 온 국민이 짊어져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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