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주의'·'세대교체' 불변···"폭은 크지 않을 듯"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대기업 연말 임원 인사 시즌이 도래했다. 시장 불황, 실적 부진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은 위기를 해소하고 성장을 주도할 인물 고르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국내 주요 4대 그룹은 각기 다른 전략을 통해 기업의 색깔을 드러낼 것으로 보이지만 '안정' 기조를 중심으로 '성과주의' '세대교체' 등 혁신을 보여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은 11월 말 또는 12월 초 대규모 임원 인사를 단행한다. 이에 앞서 이들 기업은 내부 평가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그룹은 12월 초 임원인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은 대내외 불확실성과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안정' 기조를 띌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현재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이 진행되는 만큼 우선 '안정'에 방점을 찍은 임원 인사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삼성이 주력하고 있는 미래성장동력 분야를 중심으로 '혁신'을 이끌 인물을 택할 것이라는 관측도 동시에 나온다. 삼성은 AI(인공지능), 5G, 바이오, 전장부품, 시스템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에 대규모 투자와 함께 집중 육성하고 있다.
전자부품 계열사의 '60세 퇴진 룰'이 적용될지도 관심사다. 현재 전자 부품 계열사는 전영현(59) 삼성SDI 사장, 이윤태(59) 삼성전기 사장, 이동훈(60)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등 최고경영자(CEO)가 60세에 도달한 상태다.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심 이후 그룹의 미래를 그린다면 파격적인 임원인사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부회장은 이날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서 임직원을 향해 "우리 사회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혁신하며 함께 나누고 성장하는 기업이 되자"며 미래를 위한 준비와 함께 기술혁신을 강조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12월 임원인사가 예상된다. 이 가운데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말 경영 전면에 나서며 올해부터 정기인사를 수시인사로 전환한 만큼 연말 대대적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성과가 부진한 일부 임원들을 정리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다만 정 수석부회장이 자율주행차, 수소차 등 미래차와 모빌리티 혁신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이 분야에 대한 '인사 혁신'이 있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달 '미래자동차 비전 선포식'에서 "자동차 제조사에서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 회사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특히 정 수석부회장은 올해부터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경영체제 구축 시기라는 점에서 기존 정몽구 회장 시기의 노장 CEO들의 거취가 주목된다.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이들은 각 계열사로 2선 배치돼 예우를 해준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SK그룹은 전반적으로는 안정 기조를 유지하면서 디지털 혁신 전략과 관련해 '세대교체'와 '혁신'이 이뤄질 것으로 점쳐진다. 대규모 인사보다는 꼭 필요한 곳에 '원포인트' 인사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임원 인사는 12월 초 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최태원 SK 회장은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임원 구조와 호칭 등 한차례 대대적인 조직문화와 인사제도 개편에 나선 만큼 연말인사에선 전반적으로 안정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올해 상무나 전무, 부사장 같은 임원 직급을 폐지하고, 호칭을 본부장이나 그룹장 등 직책으로 구분하도록 인사구조를 개편했다. 일단 임원 임용 시 한 차례 인사 발령을 내고 대표이사 CEO 등으로 승진할 경우만 인사 발령을 내게 된다.
이 가운데 최 회장이 강조해 온 디지털 혁신 분야를 중심으로 전문성과 경영능력을 갖춘 50대 초중반의 신임 CEO를 발탁해 그룹 분위기 쇄신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앞서 최 회장은 지난 9월 '2019년 CEO 세미나' 폐막 연설에서 "최고경영자(CEO)는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비즈니스 모델과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기 위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 사고'가 필요하다"며 "앞으로 CEO들은 혁신의 '수석디자이너'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LG그룹은 '구광모 체제'가 본격화된 올해 임원인사에서 큰 변화가 예상돼 주목된다. 구광모 회장의 실용주의 철학에 맞춰 '성과'와 '혁신'을 키워드로 임원인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는 지난 9월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이 실적 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사례에서도 엿볼수 있다. 당시 LG에서 정기 인사를 앞둔 조기 퇴진이 이례적이었던 만큼 업계의 관심이 쏠렸다. 또 지난해 취임하면서 구 회장이 그룹 모태회사인 LG화학의 수장으로 외부인사인 신학철 부회장(3M 출신)을 영입해 주목받았다.
LG그룹은 11월 말까지 구광모 회장 주재로 하반기 사업보고회를 진행 중이다. LG전자 등 주요 계열사 CEO들에게 실적 및 내년 사업 전략을 보고받는다. 따라서 사업보고회가 끝난 후 11월 말에서 12월 초 임원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범 부회장이 퇴진에 따라 연말 임원인사에서 권영수 LG그룹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등 4명의 거취가 주목된다.
구광모 회장은 지난 9월 취임 후 첫 사장단 워크숍에서 "제대로, 그리고 빠르게 실행하지 않는다면 미래가 없다는 각오로 변화를 가속해달라"며 그룹의 체질개선과 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그룹의 미래를 이끌 인물 발탁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어 각 그룹의 방향성과 색이 분명히 드러나는 인사가 될 것"이라며 "전반적으로 안정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기존 사업의 구조조정과 혁신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