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 김호성 기자] 보험사들이 자회사를 만들어 손해사정 업무를 위탁하는 방식으로 보험금을 산정하는 이른바 ‘셀프산정'에 대한 공정성 및 효율성 논란이 고조되고 있다. ‘손해사정’이란 보험사고가 발생한 경우 사고를 조사해 손해액을 평가·결정하고 지급보험금을 계산하는 업무다. 삼성화재, 현대해상 등 대형 보험사들은 자회사를 만들어 손해사정 업무를 위탁하고 있다.
23일 보험업계 및 국회에 따르면 이같은 '셀프산정'을 놓고 보험금 산정에 객관성이 결여된다는 지적과 효율성·전문성 차원에서 자회사 위탁 방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홍성국 의원은 금융감독원 자료를 토대로 "삼성생명·교보생명·한화생명 등 국내 빅3 생명보험사가 올해 상반기 자회사 손해사정업체에 지급한 위탁수수료가 831억원에 달한다"고 최근 국정감사에서 밝혔다. 아울러 손해보험사 가운데 삼성화재·현대해상·DB손해보험 등 3곳의 경우 손해사정 관련 위탁수수료 3480억원(상반기 업계 지급액 전체)의 76.4%에 해당하는 2660억 원을 자회사에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홍 의원은 “경영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상 보험사가 보험금을 직접 산정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특히 손해사정 업무 대부분을 위탁하고 있는 11개 손해사정업체 중 한 곳도 빠짐없이 모(母)보험사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공정경제 3법’이 통과되면 이들 회사들은 ‘계열사들이 50% 초과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에 해당된다. 모두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되는 것이다. 홍 의원은 이러한 보험업계의 셀프손해사정 관행에 “경영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상 보험사가 보험금을 직접 산정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각 손해사정업체의 대표자들이 모두 모(母)보험사 또는 계열사 출신이라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른바 '낙하산 인사' 논란이 될 수 있다.
손해사정업체 대표가 모회사 임원 출신인 사례는 삼성생명의 부사장 출신인 삼성서비스손해사정, 교보생명 부사장 출신인 KCA손해사정, 삼성화재 전무이사 출신인 삼성화재서비스, 현대해상 상무이사 출신인 현대하이라이프손해사정㈜ 등 11개사에서 전부 나타났다. 모기업의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영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 의원은 "현행법이 자기손해사정 금지 원칙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금융위원회는 시행령을 통해 자회사 위탁 방식의 우회로를 열어주고 보험사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불공정으로 얼룩진 자기손해사정 관행을 바로잡아 보험소비자를 보호하고 보험업계와 손해사정 시장에 공정경제의 질서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와 재계는 산업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주장이라고 맞서고 있다.
보험업계는 업무의 효율성 및 전문성 제고를 위해 손해사정 업무를 자회사에 위탁하는게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손해사정 위탁업무를 제한할 경우 보험사의 비용 증가와 보험료 상승으로 인해 오히려 소비자들의 피해가 늘 수 있다"고 했다.
금융당국 역시 보험업계와 유사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6월말 금융위원회는 자회사에 대한 손해사정 업무 위탁을 일감몰아주기로 보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밝힌 바 있다.
재계 역시 보험사들의 손해사정업무에 대한 자회사 위탁을 포함해 정부가 입법 예고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조항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개정안에는 총수 일가가 지분을 20~30% 보유한 상장사, 규제 대상 회사가 지분을 50% 초과 보유한 자회사를 신규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5개 경제단체는 올해 7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기업의 투자·일자리 창출을 막아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우려가 있다며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달 22일 전경련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총수 일가가 상장사 지분을 20% 미만으로 낮추거나 규제 대상인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50% 이하로 낮춰야 한다는 점에서, 신규 규제 대상으로 포함된 56개 상장사가 팔아야 할 지분의 총 가치는 10조8000억원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의 주장에 의하면 56개 상장사가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영향으로 인해 팔아야 할 지분 가치는 상장사 시가총액의 9.1%에 해당된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계열사 간 거래가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더 줄이기 어렵다"면서 "규제가 강화되면 기업들은 지분을 매각해 규제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고, 피해는 소액주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