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가계부채 총량관리서 전세대출 제외해야"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그야말로 '패닉 대출' 대란이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은행권 대출중단 사태가 벌어지자, 금융소비자들 사이에선 미리 대출을 받으려는 '가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특히 전세대출길마저 막힐 조짐에 가을 이사철을 앞둔 실수요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당장 전세 갱신 계약과 신규 계약을 앞둔 이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는 분위기다. 금융 당국도 실수요자의 피해를 우려해 보완책 마련을 고심 중인데, 전문가들은 가계대출 총량관리에서 전세대출을 제외시키는 핀셋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1일 은행권에 따르면 최근 시중은행 영업점에는 대출 가능여부를 묻는 상담 고객이 부쩍 늘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대출 한도 축소 규모나 시기 등을 묻던 이들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엔 나중을 대비해 미리 대출을 일으키는 가수요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 관악구 소재 A은행 영업점 관계자는 "예전에 비해 고객의 대출 문의가 2~3배가량 많아졌다"면서 "얼마까지 대출이 가능한지 한도를 확인하는 고객부터 원래 계획했던 일정보다 앞서 대출을 미리 신청하겠다며 방문하는 고객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당장 대출이 필요하지 않지만 언제 대출이 중단될지 몰라 불안해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게 영업점 직원들의 설명이다.
이들의 불안감은 은행권이 가계대출 조이기에 나서면서부터 증폭됐다. NH농협은행이 오는 11월 말까지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취급을 전면 중단한 데 이어 우리은행과 SC제일은행·농협중앙회도 일부 대출을 제한하면서다.
신용대출과 비상금 통장으로 불리는 마이너스통장(마통)을 통한 자금 융통도 어려워졌다. 이미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이내'로 축소한 농협·하나은행에 이어 KB국민·신한·우리은행도 이달 중으로 연소득까지 한도를 줄일 방침인 데다, 국민은행의 합류로 4대 시중은행 모두 마통 대출 한도가 '최대 5000만원'으로 묶였다. 지난달 말부터 가수요가 급증한 이유다.
실제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전날 기준 698조1109억원으로, 지난달 말과 견줬을 때 2조8028억원 늘었다. 한 달 동안 늘어난 주택담보대출 잔액만 3조2064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금융 당국발 대출절벽이 현실화하면서 가을 이사를 준비 중이던 실수요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업계에선 실수요자들이 주로 받는 전세대출에까지 규제가 가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 만연하다.
전셋값이 치솟고 있는 상황인 터라 전세난민의 불안감은 분노로까지 표현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오른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평균 6000만원가량. "타 금융회사로 대출 취급 중단이 퍼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당국 입장이나, 주거래은행에서 대출이 막힌 수요가 다른 은행으로 몰릴 경우 나머지 은행들도 대출 문턱을 높일 수 있다.
전세 계약을 앞둔 직장인 최 모 씨는 "주거래은행에서 전세대출이 어렵게 됐다는 소식에 다른 은행 조건을 알아보는 중"이라며 "아직 이사날짜가 많이 남아있어서 당장 대출을 받기는 힘든데, 다른 은행에서도 대출에 차질이 생길까봐 너무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도 보완책을 검토 중이다. 고승범 신임 금융위원장이 가계부채 관리 추가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여기에 실수요자 보호대책도 담길 전망이다. 고 위원장은 전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가계부채 방안을 보완할 때 (실수요자 대책도) 같이 들여다보겠다"며 "현재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답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무주택자나 실수요자를 위한 실효성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시장 상황에 따라 가계부채 총량 관리에 전세대출 등을 제외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현재 전세를 비롯한 부동산 가격은 대출 없이는 자금을 모두 마련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서 "당국이 '5~6%'로 연간 가계부채 증가율을 설정하고 관리하고 있지만, 무주택자와 실수요자들에 절실한 전세대출 등은 총량관리에서 제외하는 핀셋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