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은행서 미뤄준 대출원금·이자만 140조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정치권 압박에 금융당국이 소상공인·중소기업 대상 코로나19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를 재연장하기로 하면서 금융권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지원 조치 종료 시점이 기약 없이 미뤄지면서 부실대출 규모 파악이 어려워지고 있어서다. 금융사들과 충분한 협의 없이 진행된 갑작스런 재연장 결정을 두고 '정치금융'이 도를 넘어섰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다음달 말 종료될 예정이었던 코로나19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 기한을 재연장하기로 하고, 세부 방안 등을 금융권과 협의할 예정이다.
이번 재연장 결정은 지난 21일 국회에서 추가경정(추경) 예산안이 의결·확정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국회는 소상공인 및 방역 지원을 위한 추경 예산안을 의결하면서 전 금융권의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 재연장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는 부대의견을 정부에 제시했다.
애초 정부는 금융권과 협의를 거쳐 이달 말 혹은 다음달 초경 코로나19 금융지원 재연장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달 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코로나19 지원책과 관련해 "일단 예정대로 종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며 "2월 말, 3월 초에 연장 여부를 결정해 발표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국회 결정에 정부도 급하게 재연장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금융당국은 이미 코로나19 지원책 만료 시점을 세 차례 연장한 상태다. 2020년 3월 시작한 지원책은 그 해 9월과 지난해 3월, 9월까지 6개월씩 세 차례 연장돼 왔다. 지난달 말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이 코로나19 지원책의 일환으로 상환을 미뤄준 대출원금과 이자는 140조원에 육박한다. 만기가 연장된 대출잔액은 129조6943억원으로 집계됐고, 원금·이자상환 유예 규모는 9조7551억원이었다.
그동안 금융사들은 코로나19 지원책으로 이자조차 갚기 어려운 한계차주를 가려내지 못해 부실 리스크가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왔다. 이번 재연장으로 부실대출 규모도 더 확대될 수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부실 리스크가 큰 차주, 특히 이자도 내지 못하는 한계 차주를 가려내기 위해 연체될 개연성이 있는 차주들을 집중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지원책이 계속 연장되면서 보다 정교하게 가려내지는 못하고 있다"며 "지원 기간이 연장되면서 한계 차주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코로나19 금융지원 이후 은행권 연체율은 역대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전체 대출 연체율은 0.25%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19가 본격화되기 전인 2019년 11월 말(0.48%)보다 0.23%p(포인트) 낮은 수치다. 코로나19 여파로 대출규모가 급증했고 어려워진 가계·기업이 늘었음에도 연체율은 오히려 낮은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 지원 조치가 계속 연장되면서 실제 연체된 채권이 연체율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부실 리스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으니 이자라도 먼저 상환할 수 있게 해달라 요구했지만 대선 앞두고 정치권 입김이 커지고 있어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