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에너지 리스크↑·연준 인사들의 잇단 연설···强달러 지지
[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미국의 강력한 통화긴축 기조 아래 외환시장 내 충격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주(5~9일) 외환시장도 '슈퍼 달러' 흐름이 지속되면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8일 유럽중앙은행(ECB)의 '매파'(통화긴축 선호) 행보 예상에도 유로화는 러시아발(發) 에너지 리스크를 안고 있고, 주중 예정된 연준 고위 인사들의 연설대는 시장 내 긴축 부담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이에 내주 미국 소비자물가 발표 전으로 외환시장은 제한된 등락세를 보이겠으나, 그간 환율의 급등세가 강했던 만큼 숨고르기 장세에 들어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5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오전 10시 기준 전거래일(1362.6원)보다 2.1원 높은 1364.7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날 환율은 전거래일보다 2.4원 오른 1365.0원으로 개장했으며, 이는 장중 가격 기준 지난 2009년 4월2일(1368.0원) 이후 13년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주 외환시장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발언에서 비롯된 '긴축 폭풍'에 크게 휘청였다. 파월 의장은 "(금리인상을) 멈추거나 쉬어갈 때가 아니다"라고 언급하는 등 재차 '자이언트스텝'(0.75%p 금리인상)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고, 세계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화지수(달러인덱스)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109.6선을 돌파했다.
이에 일본 엔화 가치는 24년 만에 처음으로 달러당 140엔선까지 내렸으며, 유로화는 지난달 중순 이후 1달러로 1유로를 살 수 있는 '패리티'(등가) 붕괴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원화 가치 역시 연초부터 지난 2일까지 달러 대비 12.75% 하락했다. 이는 31개 주요국 통화 가운데 여덟 번째로 큰 낙폭이다.
이번 주 외환시장에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먼저 지난주 끝으로 공개된 지난달 미국 고용보고서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 보고서'였다는 평가다. 8월 비농업 고용지표는 예상(30만건)을 상회한 31만5000건을 기록해 견고한 모습을 보였다. 시장은 이번 보고서가 연준의 강력한 긴축 경로를 꺾을 수 없다는 평가를 내놨다.
특히 이번 주 줄줄이 이어질 연준 고위 인사들의 발언도 긴축 경계 심리를 더욱 높일 것으로 보인다. 오는 7일(현지시간) 라엘 브레이너드 연준 부의장을 비롯해 로레타 메스터 클리브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 8일 파월 의장, 찰스 에반스 시카고 연은 총재,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 9일 크리스토퍼 월러 연은 총재 등이 연설대에 오른다. 이미 연준 인사들은 연준의 긴축이 곧 완화될 수 있다는 시장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바 있다.
아울러 이달 ECB가 자이언트스텝(0.75%p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이란 관측이 확대되고 있지만, 유로화는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 사태로 에너지 위기가 더욱 고조되면서 약세 국면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시장은 지난달 유럽 물가(전년동월대비 9.1%)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ECB가 지난 7월 '빅스텝'(0.5%p 금리인상)에 이어 이달 자이언트스텝에 나설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즈프롬은 2일(현지시간) 긴급 정비작업을 이유로 가스관 공급 재개를 무기한 연기했다. 시장에서는 미국 등 G7 국가의 러시아산 원유가격 상한제 합의에 대한 보복 차원으로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무기화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등락을 이어갔던 천연가스 가격이 금주 재차 반등할 가능성이 높아졌으며, 제재 해제를 통한 가스관 부품을 요구하고 있는 러시아와 대러 제재 강화를 모색하는 서방간 갈등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진 중국에 위안화도 추가 약세 리스크를 높이는 등 달러 강세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다만, 외환시장 내 불안정한 흐름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반락할 여지도 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전까지 주요 경제지표들을 확인해야 하는데, 고용지표 발표 이후 불확실성을 일부 걷어냈다는 관측이다. ECB의 자이언트스텝 및 중국의 수출 증가세에 따른 무역흑자 기대도 원·달러 환율의 상승압력을 제한할 수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내주 미국 소비자물가 발표 전까지 불안정성은 지속되겠지만, 이번 주는 빠르게 가격이 오른 만큼 숨고르기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원·달러 환율이 1362원 수준까지 상승했지만, 이번 주에는 해당 수준에서 고점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고용 호조를 반영하며 주 초 상승 출발한 뒤 반락하고, 다시 상승하는 변동성 장세를 예상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번 주 원·달러 환율 향방에 대한 외환시장 전문가들의 코멘트]
▲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 1310~1380원
경기 모멘텀, 긴축 측면에서 달러에 대적할 지역·국가가 부재한 가운데 현재 역(逆)환율 전쟁 구도 속 승자는 미국으로 판단된다. 미국은 자국 물가 안정이 최대 과제이며, 잭슨홀 회의에서 연준의 명확한 긴축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에 1일(현지시간) 기준 자이언트스텝 가능성(72%)은 빅스텝 가능성(28%)을 크게 상회했다.
미국의 실질금리는 플러스(+)를 보이고 있으나, 독일의 실질금리는 최근 오름세에도 불구하고 부진한 경기 전망을 반영해 여전히 마이너스(-) 국면에 머물러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미국의 유동성 환경이 더욱 긴축적임을 뜻한다.
즉, 연준의 긴축·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발 악재로 경기 심리 지표가 빠르게 하락했지만, 견조한 고용 및 소비 측 지표 등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실질 수요는 연준의 결정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연준이 침체를 고려해 긴축 속도를 빠르게 조절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이는 달러화 강세를 지속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
이번 주에는 유럽 이벤트를 전후로 한 유로·파운드화 추이를 주목해야 한다. 오는 8일 ECB의 자이언트스텝 동참 여부와 함께 이후 금리인상 스텝에 대한 신호는 단기적으로 유로화의 추가 약세를 판가름할 변수다.
동시에 G7 재무장관이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제품에 대한 가격 상한제 시행을 합의한 이후 개최되는 9일 EU 에너지 장관회담도 중요한 이벤트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무기화에 나선 상황에서 유럽연합(EU)의 대응 조치는 천연가스 가격은 물론, 유로화에도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지난주 파운드화는 전주대비 2% 급락하는 등 가파른 급락세를 이어갔다. 위안화 역시 대도시에 대한 잇따른 봉쇄 조치, 즉 제로 코로나 방역정책 후유증으로 인한 추가 약세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파운화가 반등 모멘텀이 부재한 상황을 고려하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당시 수준을 하회할 가능성이 크고, 달러화 추가 강세로 이어질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이 대내적 요인보다 대외 악재에 크게 좌우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이번 주 유럽 이벤트 결과 이후 유로화 추이는 원·달러 환율의 추가 상승의 중요 변수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추석 연휴를 앞둔 달러 롱(매수) 포지션 심리 역시 추가 상승의 빌미를 제공할 여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