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사, 자금조달 수단 다각화로 생존 '모색'
업계 "정부의 추가 유동성 지원대책 절실"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자 회사채, 기업어음(CP)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여신전문금융회사(여전사)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형 여전사를 중심으로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정부가 추가 유동성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10월 1~20일 기타금융채(카드·캐피탈채)의 순발행액(발행액-상환액)은 -2조4473억원으로 집계됐다. 순발행액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회사채 발행 규모가 상환 규모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뜻이다. 기타금융채 순발행액은 지난달(-1조5120억원)에도 마이너스를 기록했는데, 최근 시장이 악화하면서 채권 발행에 어려움이 있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여전채 발행 환경이 악화된 것은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로 채권시장 전반의 신용위험이 높아진 탓이다. 금리 상승, 경기침체 우려로 자금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강원도)가 레고랜드 PF(프로젝트파이낸싱)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면서 시장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자 대규모 자금 유출이 발생하고 있다.
은행채가 최근 대규모 발행되고 있는 것도 여전채 인기 하락의 요인이다. 회사채 시장이 어려워 기업들이 은행 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려다 보니, 대출 수요를 맞추고자 은행들이 은행채를 대거 발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은행채 순발행액은 7조4600억원으로 올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달 1~21일 은행채 순발행액은 1조900억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은행들도 어려운 채권시장에서 은행채 발행에 성공하기 위해 앞다퉈 금리 수준을 높이면서 여전채 인기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최근 은행채 금리는 4~5%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은행채치고 높은 금리에, 안정성도 높다 보니 여전채에 대한 관심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조달 환경이 악화되면서 여전채 금리는 고공행진하고 있다. 올해 초 2% 중반대에 달했던 여전채 3년물(무보증·AA+) 민평평균 금리는 지난 20일 5.937%까지 올라 6% 돌파를 앞두고 있다. 신용등급이 더 낮은 여전채일수록 금리 상승폭은 더 가팔랐다. 같은 날 기준 △여전채 AA등급 3년물 6.019% △AA-등급 6.204% △A+등급 6.570% △A-등급 7.568% △BBB등급 9.788% 등을 기록했다.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형 여전사일수록 자금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여전채 발행 침체 신호는 신용스프레드(국고채와의 금리차)가 올해 초 대비 3배 가까이 확대된 것에서도 읽을 수 있다. 20일 기준 AA등급 3년물 여전채의 신용스프레드는 167bp(1bp=0.01%p)로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초(60bp)와 비교하면 약 2.8배 확대된 수준이다. 신용스프레드 확대는 채권 발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자금조달 환경이 위축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전사들은 장기CP를 발행하거나 변동금리부채권(FRN), 자산유동화증권(ABS), 해외채권 등 자금조달 수단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채권시장 돈맥경화에 대응하고 있다. 이달 롯데카드와 신한카드는 각각 1000억원, 400억원 규모로 FRN을 발행했다. FRN은 시장금리에 따라 이자율이 변동되는 특성상 발행사에 불리한 구조임에도 채권시장이 어렵다 보니 고육책을 꺼내든 것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최근에는 CP 중에서도 그나마 수요가 있는 장기물 중심으로만 발행하고 있고, FRN이나 ABS로 자금조달 루트를 확대하고 있는 것도 결국 시장 상황이 안좋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대형사 계열이나 큰 회사들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데 중소형사들은 자금조달이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금융위원회는 지난 20일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여유 재원 1조6000억원을 긴급 투입하고 캐피탈콜을 준비한다는 대책을 내놨다. 또 은행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비율 정상화 조치를 6개월 유예해 과열된 은행채 발행경쟁을 완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자금줄이 꽉 막힌 여전사를 중심으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정부의 추가 지원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캐피탈콜에 응하려면 다시 그만큼의 자금을 조성해야 해 은행채 발행을 또 늘릴 가능성이 있고, 그러면 여전사들 입장에선 현재의 상황이 결국 해소되지 않는 것"이라며 "LCR 규제 정상화 조치를 유예한 것은 단기적으론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자금이 말라버린 시장을 안정화시키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이경록 신영증권 연구원은 "채안펀드의 신속한 가동, 은행 LCR 정상화 속도 조절 등의 조치가 나오고 있지만 한번 무너진 심리를 되돌리기 위해선 좀 더 강력한 추가 안정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며 "2020년 코로나19 당시처럼 적격담보증권의 전향적 확대 조치도 고려할 만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