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사는 대다수 미지급 예상···금융당국 '성과 보상 자제 요청'까지
[서울파이낸스 남궁영진 기자]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 행진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였던 증권가에서 1년 새 급반전된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각가지 악재로 대다수가 크게 부진한 실적을 거두면서 성과급 규모도 대폭 줄어들 전망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성과급 지급에 신중해달라는 사실상의 '경고장'을 날리면서 증권사들은 더욱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845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1조4855억원)과 비교해 43.1% 감소했다. 이로써 3년 연속 영업이익 '1조 클럽' 진입에 실패했다. NH투자증권(5214억원)과 삼성증권(5786억원)도, 재작년에 비해 반토막으로 고꾸라졌다. 가파른 금리 인상에 더해 그간 실적을 지탱했던 브로커리지(위탁매매)와 투자은행(IB) 부문이 저조하면서 성장 동력이 사라진 영향이다.
이미 낮게 형성된 컨센서스(시장 추정치)를 밑도는 실적을 내자, 증권사들의 성과급 기대감도 옅어진 모습이다. 지난해 증권사들은 기본급 대비 180~2000% 범위에서 성과급을 지급했지만(관리직군 기준), 올해는 이를 크게 밑돌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성과급이 지급된 미래에셋증권과 키움증권은 예년보다 규모가 큰 폭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증권사 사정도 비슷하다. 조만간 성과급 지급이 이뤄지는 대형증권사 한 관계자는 "부서별로 크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예년보다 확실히 줄었다는 사실은 사내에서 이미 도는 얘기"라고 말했다.
시장 변동성 증가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까지 겹치며 쇼크에 가까운 실적을 낸 중소형 증권사들에게 성과급은 '언감생심'에 가깝다. 다수의 중소형사 실적은 전년보다 70~90%대 급감했고,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곳도 있다. 이들 증권사는 자금경색 우려가 불어닥친 지난해 말부터 자회사 매각, 희망퇴직 등을 통해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부동산 PF발(發) 위기 등으로 촉발된 실적 급전직하에 회사가 대규모 구조조정 등을 통해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는 마당에 성과급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면서 "이는 직원들도 받아들이는 분위기이고, 비슷한 사정의 증권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성과급이라는 말 그대로 나름의 공을 세운 일부 직원의 경우 어느 정도의 보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성과급 지급과 관련해 제동을 건 터라 증권사들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부동산 익스포저(위험 노출액)가 높은 증권사는 향후 부동산 시장 상황 및 리스크를 충분히 검토한 후 성과 보수를 합리적으로 산정해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특히 증권사의 성과급 이연제도를 중점 점검할 뜻을 내비쳤다. 성과급 이연제는 성과급의 60%를 먼저 지급하고 40%를 3년에 걸쳐 분할 지급하는 제도다. 성과급을 지급했다가 손실이 발생하면 이를 삭감·환수하는 '클로백'(clawback) 제도 채택 여부도 점검할 계획이다. 성과에 따라 보상받아야 하지만, 잘못될 경우,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는 게 마땅하다는 설명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성과급 지급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경고성 띤 자제 요청에 증권사들은 불만을 가지면서도 몸을 사릴 것"이라며 "증권가에 실적 축포·성과급 잔치라는 말이 돌았던 지난해에 비하면 그야말로 1년 새 격세지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