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생산거점 다양화 시도"···"고객사도 생각해야"
[서울파이낸스 이서영 기자]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한 자국우선주의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있다. 미국은 명목상 반도체 기업에 지원을 늘리겠다는 취지지만, 중국에 공장을 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는 까다로운 조건들이 동반됨에 따라 국내 반도체 업계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생산지 다변화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다만 보조금을 지원하는 유럽 등을 선택하기에도, 비용문제와 더불어 주요 고객사가 미국 등에 포진돼 있는 만큼 쉽지 않아 보인다.
28일 미국 정부는 이날부터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장려를 위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향후 5년간 총 390달러(한화 50조원)을 지급하는 보조금을 신청 받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아직까지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이유는 반도체법의 가드레일(안전조치) 조항 때문이다.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 등의 우려국에서 반도체 생산 능력에 한도를 두는 협약을 상무부와 진행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중국 생산 물량이 삼성전자 낸드플래시 물량의 40% 차지한다. 중국 우시와 다롄에 D램 생산 공장을 운영하는 SK하이닉스의 경우 해당 중국 공장 제품의 전체 생산물량의 48% 가량인 것으로 알져져 있다.
심지어 미국의 가드레일 조항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3월에 구체적인 조항이 발표하며, 이날 뉴욕타임스 등 외신을 통해 알려진 또다른 조건은 1억5000만달러(2000억원) 이상의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에 보육 지원 계획도 제출하도록 할 예정이다.
미국의 조치에 전문가들은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생산 거점 다변화가 동반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에 주목받는 곳은 유럽이다. 미국에 대항해 유럽 또한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430억 유로(약 59조9000억원)를 지원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과 달리, 유럽은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독일·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들은 한국과 비슷한 사정으로 중국과 쉽게 헤어질 결심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국과 같은 가드레일 조항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미국의 인텔은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인텔은 독일과 EU로부터 공장 건설비 40%에 해당하는 70억 유로(약 9조7000억원)의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대만의 TSMC도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고, 공장 건설을 검토 중이다.
국내 반도체 업체의 경우 삼성전자는 이미 미국 테일러시에 공장을 짓고 있지만, SK하이닉스의 경우 아직 미국에서 착공에 들어가지 않고 부지 물색 단계다. 이에 유럽이라는 선택지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국내 반도체 업계는 유럽 보조금 쪽으로 고개를 트는 것도 쉽지 않은 선택지라는 게 업계 전언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유럽의 보조금 이야기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내 반도체 업체들 주요 고객사인 빅테크 업체는 특히 미국에 포진돼 있다"며 "유럽에 공장을 세우면 미국만큼이나 비용측면에서 많이 나가기 때문에 리스크도 더욱 커져서 윗선에서 유럽에 공장을 세우는 안이 크게 진척되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