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제약 업계의 '혁신'
[데스크 칼럼] 제약 업계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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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 대형 제약사 담당을 만나 해당 업체와 국내 제약산업 상황 관련 얘기를 나눴다. '혁신'(革新)이 화제에 올랐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혁신의 뜻을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라고 설명한다. 

혁신은 오래전부터 한국 제약업계의 화두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13일 한미약품은 "올해 상반기에만 해외 학회에서 총 19건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독보적인 연구개발(R&D) 역량을 입증했다"면서, 글로벌 '혁신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라고 소개했다. "최근 한미그룹 지주회사 한미사이언스는 미래 3대 핵심 성장동력 중 하나로 '혁신 신약 R&D'를 선정했다"고도 밝혔다. 

한미약품이 강조한 혁신 신약을 영어로 '퍼스트-인-클래스'(first-in-class)라고 한다. 부가가치 높은 세계 첫 치료제란 뜻이다. 혁신 신약이어야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는 '블록버스터'급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선 36가지 국산 신약이 나왔다. 1호 '선플라'(SK케미칼)가 1999년 7월 탄생했고, 36호 '엔블로'(대웅제약)는 2022년 11월 허가받았다. 

23년 동안 36호 국산 신약이 등장했으니 결코 적다고 여기기 어렵다. 하지만 국산 신약의 가치를 뜯어보면 아쉬울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만났던 대형 제약사 임직원에게 물었다. "이제까지 나온 국산 신약 가운데 혁신이라 부를 만한 사례가 있을까요?" 

상대방은 안타깝다는 표정과 함께 "블록버스터급 혁신 신약이라 부르긴 어렵지만, 일부 제품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좋으니,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성공 사례가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R&D에 투자하며 노력 중인 제약사들한테 힘을 실어주면 토종 혁신 신약이 개발될 것이다"라고도 했다. 

제약업계뿐 아니라 경제계나 정치계에서도 혁신이란 말이 흔하게 쓰인다. 그러나 혁신 신약을 개발하기 어려운 만큼 혁신에 성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혁신하려면 살을 도려낼 각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정치인은 혁신에 대해 "피가 철철 흐를 정도로 아픔을 겪어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유한양행이 31호 국산 신약인 폐암 치료제 '렉라자'에 건강보험급여가 적용될 때까지 환자들한테 무상 공급하겠다고 했다. 비록 렉라자가 혁신 신약은 아니더라도, 국내에서 혁신 실천을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이윤의 사회 환원'이란 고(故) 유일한 박사의 창업정신을 지키면서 폐암 환자들의 치료비 부담을 덜어줄 수 있어서다. 

조욱제 유한양행 사장은 지난 10일 열린 R&D 및 사회공헌 기자간담회에서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Early Access Program·EAP)을 통해 렉라자를 무상 지원한다고 밝혔다. 조 사장은 "고 유일한 박사님의 창업정신을 이으려 렉라자 1차 치료제 EAP를 결정했다. 투병만으로도 힘든 폐암 환자를 위해 사회 환원 이념을 실천하겠다"고 했다.

렉라자 1차 치료제 EAP 규모는 의료기관과 환자의 수에 제한 없다. 국산 신약 중 건강보험급여 적용 전까지 무제한 무상지원 사례는 렉라자가 처음이다. 유한양행에 따르면 비급여일 경우 렉라자의 1년간 처방 비용은 7000만원이 넘는다. 앞으로 건강보험급여가 확대될 경우 본인 부담금 5%를 내면 된다. 렉라자 건강보험급여는 내년 1~2분기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약업계에서 이뤄지는 이같은 ESG 실천 사례가 혁신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주현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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