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적 M&A·체질개선으로 외형·질적 성장 이뤄
조직 다잡고 안정적 지배구조·승계구도 기틀 마련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KB금융그룹의 황금기를 연 윤종규(68) 회장이 재임 9년 만에 그룹을 떠나기로 했다. 임기를 3개월여 앞두고 4연임 가능성까지 거론되던 상황에서 세대교체를 위해 미련 없이 '아름다운 퇴진'을 택했다. KB금융을 명실상부한 리딩금융그룹으로 올려 놓은 윤 회장은 떠나는 순간까지 기업의 백년대계를 고려한 결정을 함으로써 존경받는 'KB맨'으로서의 모습을 후배들에게 남겼다.
사실 윤 회장은 KB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 몇 십년간 한 은행에 몸담았던 다른 금융지주사 회장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회계법인에서 오래 근무했던 회계·재무전문가인 윤 회장과 KB의 인연은 2002년 그가 국민은행 재무전략기획본부장(부행장)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외부 출신이지만 KB금융에서 10여년을 지낸 뒤 회장직에 오른, 내부 인사이기도 하다.
1955년 전남 나주 출신 윤 회장은 1973년 광주상고(현 광주 동성고)를 졸업하고 외환은행에 입행했다. 이후 일과 학업을 병행,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야간으로 다니며 학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 공인회계사(CPA) 자격증을 취득한 후 다음해인 1981년 제25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상고 출신 천재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관료의 길이 아닌 회계사의 길을 택한 윤 회장은 삼일회계법인에 입사, 20년 가까이 회계사로 활동하며 삼일회계법인 부대표까지 올랐다. 당시 이런 윤 회장을 눈여겨보던 고(故)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그를 은행 재무전략본부장(부행장)으로 영입했다. 당시만 해도 은행권에 '순혈주의'가 만연했던 터라 윤 회장의 영입을 두고 적잖은 파장이 일기도 했다.
이후 국민은행 개인금융그룹 부행장까지 지냈으나 2004년 국민카드 흡수합병 과정에서 회계처리 문제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퇴진했다. 2005년부터 5년간 김앤장법률사무소 상임고문을 지내다 2010년 다시 KB금융 최고재무책임자(CFO·부사장)으로 발탁, 6년 만에 복귀했다. 그로부터 4년 뒤 KB금융 회장(국민은행장 겸직)에 올랐다.
2014년은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문제를 놓고 당시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 간 갈등으로 내부 분열(KB사태)이 일어났던 때였다. 두 수장들 모두 관치·낙하산 인사였던 탓에 조직 수습에 어려움을 겪으며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고, 윤 회장이 KB사태 수습이란 과제와 함께 바통을 이어받았다.
외부 출신이자 내부 인사면서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이력 덕에 내부 파벌에서 자유로웠던 윤 회장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KB사태'에 따른 조직 혼란을 빠르게 잠재우고, 재무전문가로서의 특기를 살려 KB 기초체력 다지기에 나섰다. 이는 KB금융이 경기가 악화되는 상황에서도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와 영업기반을 바탕으로 매년 최고 수준의 실적을 내는 배경이 됐다.
9년간 그룹을 이끌면서 윤 회장이 주력한 것은 포트폴리오 강화였다. KB금융은 2008년 지주사 전환 이후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를 추진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윤 회장 체제에서 2015년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2016년 현대증권(현 KB증권), 2020년 푸르덴셜생명(현 KB라이프생명) 등 적극적인 M&A를 통해 종합금융그룹으로서의 모습을 갖춰 나갔다.
이를 통해 외형을 크게 키운 것은 물론,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그룹의 당기순이익도 대폭 늘렸다. 외형 성장과 질적 성장을 동시에 이룬 것이다. KB금융은 지난 2017년 금융그룹 최초로 3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올리며 신한금융으로부터 리딩금융 지위를 넘겨받았다. 이후 4년 만인 2021년 그룹 당기순이익이 4조원을 넘어섰다. KB금융은 올해 상반기에만 3조원에 육박하는 당기순이익을 내며 반기 기준 최대 실적을 다시 한번 갈아치웠다. 윤 회장 재임 첫해인 2014년 당시 순이익(1조4000억원)과 비교하면 9년 새 수익이 3배 넘게 성장한 것이다.
KB금융의 지배구조 안정화는 윤 회장이 가장 오랜 기간 공을 들인 분야이기도 하다. KB금융은 오랜 기간 낙하산 인사로 몸살을 앓았던 터라 안정적인 지배구조 확립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탄탄한 지배구조를 바탕으로 승계 프로그램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해, 외풍을 차단하고 KB사태와 같은 내분을 방지하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윤 회장은 차기 회장 후보자군을 상시 관리하는 프로그램 기반을 마련하고, 사외이사 및 회장 선임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먼저, 현 KB금융지주 회장은 사외이사 및 회장 선임 과정에 참여할 수 없도록 했고, 사외이사진 구성도 강화해 외부 개입의 여지를 줄였다.
세대교체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다 예측 가능한 승계구도도 마련했다. 지주에 부회장직을 신설해 안정적인 승계구도를 구축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허인(62)·양종희(62)·이동철(62) 등 현 부회장 3인이 윤 회장의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차기 회장으로 거론되는 이유도 이같은 안정적인 승계구도에서 비롯됐다.
KB금융의 안정적인 지배구조는 이번 윤 회장의 용퇴로 완성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거세지는 관치금융 기조와 장기집권에 부정적인 금융당국의 시각 아래에서 윤 회장은 4연임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음으로써 외부 개입의 가능성을 차단했다는 평가다. 박수칠 때 떠나는 윤 회장의 뒷모습이 조명받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