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부패국가로 가는 길
[홍승희 칼럼] 부패국가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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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재무부 관리들이 국세청은 재무부 산하여도 세금 관련 법제부터가 너무 복잡하고 여러 갈래 실타래를 꼬아놓은 것 같아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예 들여다 볼 생각을 못한다고 푸념하곤 했다. 당시 재무부는 행정고시 상위 합격자들을 우선적으로 채가곤 하던 엘리트부서여서 자부심이 대단했던 그들이 하는 말이다.

그런 까닭에 재무부 본부는 사실상 금융만을 다루고 외청으로 나가있던 국세청이나 관세청은 그야말로 요약된 최종보고 내용이나 장관이 받아보는 수준이었다. 양 부문간에 일종의 장벽이 세워진 셈이었고 이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이런 장벽이 한국사회의 기득권 카르텔의 근간이 되고 있다. 극소수 재벌 혹은 준재벌급 부자들의 성역이 장벽을 치고 있는 공직사회 내의 신출귀족들과 서로 어우렁더우렁 엮이며 갈수록 일반 국민들의 세계와 분리되어 멀어져간다.

과거에는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에 그런 권력의 비위를 맞춰주면서도 돌아서서 '그래봐야 너희는 한때'라고 비웃으며 한시적으로 상호 이익을 공유하던 게 재계만의 처세로 보였다. 그러나 요즘은 검찰이 국민의 감시`감독을 받지 않을 그들만의 성벽을 높이면서도 퇴직 후 진출할 영토를 넓히기에 여념이 없고 일명 이미 진출할 영토를 넓혀 놓아 현직과 전직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끈끈한 유대로 일명 모피아라 불리는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그런 이권확대로 만족하지 못하고 요즘은 재정준칙 법제ㅘ를 추진하며 국민의 감시를 피할 성벽 올리기에 열중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한국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벌들이 세습귀족으로 자리를 굳였다면 검찰과 기재부 관료들은 신흥귀족으로 자리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양새다. 권력과 금력이 결합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부패를 낳는다.

상층부에서 이처럼 거대한 부패의 카르텔을 구축하기 위해서 기를 쓰면서 동시에 하부에서는 생존형 부패로 이어질 위험한 시도를 하고 있다. 현재 말단 공무원들은 일부 의혹을 받는 분야를 빼면 상당히 청렴한 문화가 정착돼 있지만 지금 그런 문화적 기반을 허물려 하는 것이다.

30년 전만 해도 관청에 서류 한 장 떼러 가면 소위 급행료라는 게 횡행했다. 교통경찰에게 딱지 떼는 걸 피하느라 뇌물 건네는 노하우가 학습되기도 했다. 그런 공무원사회를 정화시킨 것은 적어도 하위직 공무원들의 경우 김영란법 이전에 공무원들의 삶이 안정화되면서부터다.

대기업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현실성 있는 급여가 지급되고 정년이 보장되는 데 더해 노후를 안심할 수 있는 공무원연금이 있기에 사소한 뇌물로 그런 안정된 삶을 포기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길을 선택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 공무원들의 안정된 삶이 흔들리면 돈의 유혹 앞에 쉽게 흔들릴 수 있다.

조선왕조 관리들의 부패는 그들이 받던 녹봉을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건국 초기의 토지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소수에 의해 사유화된 농지를 얻지 못한채 한 달에 쌀 한두말 녹봉만으로 정상적인 생계유지를 할 수 없는 양반관리들도 그렇지만 아예 녹봉조차 없던 아전들은 당연히 그 쥐꼬리만 한 권력을 휘두르며 생존을 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부패는 전염성이 매우 강해 생계의 위협에 직면하면 소소한 권력이라도 휘둘러 자신들의 안전부터 꾀하고자 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그 휘둘러지는 권력에 피해를 당하는 것은 힘없는 일반 서민들이 될 수밖에 없고.

특히 기득권 카르텔의 부패는 극단적 양극화로 치달아가며 사회적 균열을 가속화시킨다. 멕시코의 부패에 관한 보고를 보면 아직 우리와 먼 나라의 얘기처럼 보이지만 지금처럼 각자도생의 문화가 지배하며 상위층과 공직자들이 부패로 서로 엮여 가면 그 길이 결코 멀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그런 사회에 발전, 성장의 동력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극단적인 부의 편중과 갈수록 생존이 위험해지는 빈곤층이 확대되는 사회에서 창의성의 기반으로 한 기술발전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창조적인 생산활동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간신히 부패의 사슬을 끊고 성장을 이루어낸 우리 사회가 다시 무기력한 다수를 양산하며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서는 이 사회를 숙주로 몸집을 불리는 기득권 세력들은 안전하고 편안할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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