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사 연구 예산 지원···ESG 경영 철학과 부합
기술 탈취·인력 누출 등 부작용 발생 가능성도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스마트 건설기술 확보 및 신사업 진출을 위해 주요 건설사들이 중소·스타트업 기업과의 협력에 공을 들이고 있다. 공모전·오픈이노베이션 등을 통해 혁신 아이디어를 가진 중소기업을 발굴하고 기술을 공동 개발하면서, 상생·ESG경영에도 힘을 싣겠다는 전략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삼성물산, 현대건설, DL이앤씨, 롯데건설, SK에코플랜트, 반도건설, 호반그룹 등이 중소·스타트업 기업 대상으로 기술 공모전을 개최했다. 이들의 주요 응모 희망 분야는 △친환경 요소 기술(자재·에너지·재활용 등) △스마트 건설 기술(인공지능·로봇·모듈러 등) △원가 절감 △일반 사업 분야(플랜트·토목·조선 등)이다. 공모전들은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개방형 기술 개발)' 형태로 모두 대형·중소기업이 협력해 기술을 개발한 뒤 사업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식 재산권을 한 기업이 독점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지식 재산권을 독점하지 않는 만큼 기술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줄지만 다른 장점도 있다. 업계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가장 큰 장점은 '기술 확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내부의 많은 인력과 시간을 써서 기술을 독자 개발하는 것 보단 기술을 개발 중이나 자금 부족 등으로 상용화가 어려운 외부 기업에 투자해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며 "건설사는 필요 기술을 확보하고, 협력사는 필요 예산을 지원받기 때문에 서로 '윈-윈(Win-Win)'이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가 추구하는 동반 성장·상생 경영과도 부합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러한 방식이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에서 주는 혜택도 크다. 대기업-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노력을 평가하는 지표인 동방성장위원회의 '동반성장 평가'에서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되면 공정거래위원회 직권조사 면제, 조달청 공공입찰 참가자격 사전심사 가점 부여, 국세청 모법납세자 선정 우대 등의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올해 최우수 기업에 이름을 올린 건설사는 △삼성물산 건설부문 △현대건설 △GS건설 △현대엔지니어링 △SK에코플랜트 △DL이앤씨 △포스코이앤씨 △한화 건설부문 △한양건설 △자이씨앤에이 △효성중공업 등이다.
국내에서는 2021년 공정거래법이 개정돼 일반지주회사의 벤처캐피털(CVC) 설립이 가능해지면서 건설사들이 CVC를 설립 후 스타트업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고 있다.
GS건설은 지난해 자본금 130억원을 출자해 100% 자회사 CVC인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해 회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건설업 및 관련 신기술벤처기업에게 투자하고 있다. 올해도 캠프-엑스플로 2023(Camp-XPLOR 2023) 프로그램을 통해 스마트 시티, 스마트 안전, 기후위기 대응, 실버산업과 관련한 기술 및 사업모델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모집했다.
호반건설도 스타트업 투자와 오픈 이노베이션에 활발하다. 액셀러레이터 법인 '플랜에이치벤처스'를 설립한 이후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R&D연계 등으로 55번의 오픈이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현재는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진흥원 민·관협력 오픈이노베이션 지원 사업을 통해 선정된 '노이즈엑스', '베토텍', '아이들' 등 3개사와 층간소음 저감, 미장로봇 등을 개발하고 있다. 우미건설도 프롭테크 기업 직방이 설립한 CVC '브리즈인베스트먼트'가 운용하는 벤처 펀드에 100억원을 출자했다. 브리즈인베스트먼트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VR(가상현실), 핀테크 등의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 공모전을 통한 중소·스타트업 기업과의 기술 개발도 성황이다.
SK에코플랜트는 '콘테크 미트업 데이' 공모전 등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작년 '케이씨엠티'사와 '케이에코바(KEco-bar)'를 공동개발하고 현재 생산·판매중이다. 현재 1년에 1만6000톤을 생산하고, 내년 4만톤, 2027년 20만톤까지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케이에코바는 폐페트병을 재활용한 원료로 만들어져 자재난과 시대가 요구하는 친환경 자재라는 점에서 우수하고, 기존 철근보다 가격도 저렴하다. 기존 철근과 달리 녹이 슬지 않고 강도는 두 배 더 단단하다고 회사는 설명한다.
롯데건설의 경우 친환경 건설 신소재 기술개발 벤처기업인 '위드엠텍'과 기존 콘크리트 대비 탄소 배출량을 최대 90%까지 저감할 수 있는 친환경 콘크리트를 공동개발했다. 최근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 도면 '팀뷰'도 지난해 9월 회사가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해 진행한 오픈 이노베이션 공모전에서 선정한 '팀워크'사와 개발한 것이다
대우건설은 현재 '한국형 도심항공교통(K-UAM)' 실증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실증용 기체는 드론 제조·소프트웨어 전문기업 아스트로엑스 등이 공동 개발 중인데 대우건설은 2020년 해당 회사에 지분 30%를 투자한 바 있다. 아스트로엑스의 전문 기술을 바탕으로 대우건설은 버티포트(수직이착륙장)의 설계·시공·운영과 버티포트 내 교통관리 시스템 개발을 주관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공동 기술 개발 시 기술 탈취나 인력 누출 등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재용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투자할테니 스타트업이 알아서 기술을 개발하라는 자세는 적절하지 않다"며 "건설 업체들도 혁신기술 개발 과정에서 중소기업 등에 제공할 수 있는 데이터와 기존 기술 자료를 공유하고 동등한 위치에서 문제 해결에 대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