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F·라임 사태 당시 적용된 '손실액 선지급'···홍콩ELS는 힘든 이유
DLF·라임 사태 당시 적용된 '손실액 선지급'···홍콩ELS는 힘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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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ELS 자율배상안 두고 판매사-투자자 합의점 '진통'
투자자별 배상비율 천차만별 예상···배상액 1조원대 추산
금소법 이후 판매된 ELS···불완전판매 소지 다퉈볼 필요 커
금융정의연대 등 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열린 홍콩 ELS 대규모 손실사태 관련 금융당국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정의연대 등 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열린 홍콩 ELS 대규모 손실사태 관련 금융당국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금융당국이 발표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자율배상안을 두고 판매사와 투자자들이 합의점 마련에 진통을 겪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지난 DLF·라임펀드 당시 판매사들이 고객 보호 차원에서 시행했던 '투자원금 일부 선지급' 방안은 이번 홍콩ELS 배상 과정에서 적용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불완전판매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됐던 DLF·라임펀드와 달리 ELS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 이후 판매됐던 상품이라 판매사와 투자자 간 책임소재를 놓고 다툴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복잡한 구조의 사모펀드였던 DLF·라임펀드와 달리 ELS는 비교적 상품구조가 정형화돼 대중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판매된 상품이다. 그만큼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이 고려될 수밖에 없어 과거 사모펀드 손실사태와 같은 배상안 일괄 선지급은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분위기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ELS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은 내부적으로 고객 배상 시뮬레이션, 상품 판매 실태조사 등에 돌입하는 한편, 법무법인과 자문계약을 맺고 홍콩ELS 투자자 사례별 법률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배상비율에 따라 배상액이 수천억원 가량 달라질 수 있는 만큼 투자자 사례를 꼼꼼하게 살펴보겠다는 취지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홍콩ELS 손실배상 기본비율을 20~40%로 하고, 투자자별 사례에 따라 0~100% 배상비율을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의 자율배상안을 발표했다. ELS 투자경험이 없거나 금융취약계층인 경우 배상비율이 최대 100%까지 높아지고, 금융상품 이해력이 높거나 ELS 투자경험이 많다면 최저 0%까지 낮아진다.

이같은 내용의 자율배상안을 두고 판매사와 투자자들 모두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은행 등 판매사들은 배상비율이 예상보다 높게 산정됐다며 난색을 표했고, 투자원금 전액 배상을 요구해온 투자자들은 배상안이 판매사에 유리하게 만들어졌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투자자들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농협 앞에서 '대국민 금융사기 규탄 집회'를 개최하는 한편, 집단소송도 검토하는 등 투자원금 전액 배상을 위한 강경대응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판매사들 역시 수조원대 규모의 자율배상에 나섰다가 배임 이슈에 휘말릴 수 있는 만큼 선제적으로 배상액을 지급하는 것보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결정을 먼저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금감원이 11일 발표한 자율배상안의 경우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라 투자자별 사례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모호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금감원 분조위는 민원이 들어온 실제 사례를 토대로 배상비율이 결정돼, 보다 명확한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분조위에 상정된 안건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통상 2~3개월이 걸린다. 금감원이 다음달 대표 홍콩ELS 손실사례에 대한 첫 분조위를 개최할 예정이므로, 이를 기반으로 판매사들이 산정하는 배상비율은 올해 하반기에나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홍콩ELS 손실 배상을 놓고 판매사와 투자자들 간 줄다리기가 오래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면서 지난 DLF(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라임펀드 손실사태와 관련해 은행들이 시행했던 '배상금 선(先)지급' 방안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분조위 결과가 나오기 전 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서다.

당시 은행들은 투자원금의 50%를 먼저 지급한 후 분조위의 배상비율 결정에 따라 최종 배상액을 확정했다. 예컨대, A투자자에게 투자원금의 50%를 먼저 지급한 후 분조위 기준에 따라 60%를 배상해줘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면 나머지 10%를 차후 지급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판매사들은 이번 홍콩ELS에 대해선 배상금 선지급이 사실상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DLF와 라임펀드는 구조가 복잡한 데다 금소법 시행(2021년 3월) 전이라 불완전판매가 만연했다. 특히 라임펀드의 경우 '사기' 상품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판매사 잘못이 명백했던 탓에 고객 보호 차원에서 분조위 결정이 나오기 전 배상액을 선지급해야 할 필요가 컸던 것이다.

반면, 홍콩ELS 상품은 일부 불완전판매 정황이 확인되긴 했지만, DLF·라임 때처럼 만연했던 것은 아니라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11일 홍콩ELS 자율배상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DLF 사태 때와 비교해 상품 특성이나 소비자환경 변화 등을 감안할 때 판매사의 책임이 더 인정되긴 어렵지 않겠나 본다"며 "DLF 때보다 전반적인 배상비율이 높아지진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배상액도 판매사들의 선지급 결정을 부담스럽게 하는 요인이다. DLF의 경우 은행권 자율배상액이 2000억~3000억원 규모였는데, 홍콩ELS의 경우 올해 상반기에만 배상액이 1조원을 훌쩍 넘을 것이란 추산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SK증권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배상비율을 40%로 가정했을 때 올해 상반기 시중은행의 ELS 손실 배상액 합산 규모는 1조5900억원으로 추산된다. NH투자증권도 같은 기준으로 은행권이 1조4550억원을 배상해야 할 것으로 진단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DLF나 라임과 달리 홍콩ELS는 개별 투자자의 사례를 일일이 들여다볼 필요가 크고, 배상비율이 차감될 사례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며 "만약 배상금을 선지급했다가 추후 배상비율이 더 낮게 산정될 경우 투자자들에게 배상액을 돌려받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또다른 은행 관계자는 "홍콩ELS는 배상액 규모가 너무 크다 보니 선지급 방안은 엄두도 못내는 상황"이라며 "아직 홍콩ELS 손실액이 다 확정된 것도 아니라 일단 상황을 두고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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