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권역보다 20~30% 저렴한 임대료···'붉은 벽돌' 콘셉트도 사람들 모아
자본 지속 유입되며 높아진 임대료에 기존 원주민은 쫓겨날 수 있단 우려도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성수동 상권이 지난 몇년간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며 부동산 한파가 강타한 지난해에도 공실률 0%를 기록하는 등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곳은 특히 다양한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며 2030세대들의 발길을 끌어당겼고, 다양한 리테일 시설이 들어오며 단숨에 서울 핵심 상권으로 부상했다는 평가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3번 또는 4번 출구에서 나와 한강방면(남쪽)으로 2~3분 걸어 내려오면 일명 '카페거리'가 나오고 이는 성수동에서 맛집들과 '팝업의 성지', 연무장길과 연결된다.
5일 기자가 방문한 성수동은 작은 골목마다 유명 브랜드의 팝업스토어와 개인 카페, 식당 등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어떤 곳을 둘러봐도 '임대문의'가 붙은 빈 상가나 문을 닫은 가게가 없었다. 1층에 자리한 카페와 밥집마다 사람이 가득 차 대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방문일이 평일 점심시간대인 점을 감안하면 그만큼 인근의 오피스 출퇴근 인구가 많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패션·문화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과 IT 스타트업이 성수동 일대로 대거 이전해왔다.
대표적으로 '케이팝' 문화를 만드는 SM엔터테인먼트가 강남 압구정동을 떠나 2021년 성수동으로 사옥을 이전했다. 또 명품 패션 브랜드 디올이 대형 팝업스토어를 열어 상시 운영중이고, '무신사'는 성수동에 본사 무신사캠퍼스를 열었다. 또 다른 패션기업 에이블리도 2021년부터 성수동에서 3300㎡ 규모의 자체 풀필먼트 센터를 운영 중이다. 이들 회사는 최근 성수동이 젊은 트렌트를 선도하고 있어 이곳을 선택했다고 설명한다.
취재 결과 럭셔리 패션 아이웨어 기업 젠틀몬스터가 올해 신사옥을 열 예정이고,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한 '크래프톤'도 사옥(약 21만㎡부지)을 성수동으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3대 업무지구인 광화문, 강남, 여의도의 2023년 4분기 공실률은 각각 4.4%, 3.7%, 2.9%를 기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성수동의 오피스 공실률은 0%였다. 특히 부동산 침체기였던 2022년 1분기 이후 8분기 연속 0% 공실률을 보이고 있어 같은 기간 공실이 대거 발생한 서울 주요 상권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날 만난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상가와 오피스의 임대료가 오르긴 했지만 한번 들어오면 그만큼 본전 이상을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라며 "팝업스토어의 경우 10평 매물이 일주일 기준 500만원부터지만, 여름 말까지 예약이 모두 끝난 상태"라고 했다.
그의 말을 종합하면 성수동이 이 같은 낮은 공실률을 보이는 이유는 아직까지 타 권역과 비교해 낮은 임대료라는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수 권역 오피스 임대료는 최근 몇 년간 꾸준하게 상승했는데 지난해 성수동 주요 오피의 실질 임대료는 3.3㎡당 29만원으로 2년 새 40%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주요 오피스 권역인 △명동역 57만원/3.3㎡ △강남역 45만원/3.3㎡ △광화문역 39만원/3.3㎡ △홍대입구역 34만원/3.3㎡ 등의 약 70~80% 수준으로 저렴하다.
또 성수동만이 가지고 있는 '붉은 벽돌', '공장' 콘셉트가 레트로함과 트렌디함을 자아내 트렌드에 민감한 기업들을 자연스레 이곳에 모으고, 이에 따라 젊은 소비층도 따라왔다. 붉은 벽돌 건물은 산업화 시기 세워진 것으로, 2000년대 재개발·재건축이 대거 진행되며 서울 곳곳의 붉은 벽돌 건물들이 사라졌지만, 성수동은 201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돼 건물을 고치거나 새롭게 만드는 일이 없었다.
특별계획구역이 해제된 이후에도 성동구는 이러한 벽돌 외관이 사라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벽돌 외관에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건축 가이드라인도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지하철 역사와 오랜 건물들이 그대로 붉은 벽돌을 유지하게 됐고,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일부 기업들이 붉은 벽돌을 활용해 건물을 세우면서 성수동만의 고유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망 기업들이 성수동으로 모여들수록 낮은 임대료로 장사하거나 거주했던 기존 원주민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공실이 없는 만큼 권리금은 무섭게 치솟고 있으며, 자본가인 대기업 등이 이곳에 고층 건물을 짓고 분양에 본격 나서기 시작하면서 골목마다 있던 개성있는 작은 카페와 매장들이 사라지고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임대료에 기업 리테일 숍만 즐비하게 됐다는 것이다.
토지거래 가격도 따라서 치솟고 있다. 알스퀘어 자료를 보면 2022년부터 성수 권역의 토지거래 가격은 3.3㎡당 1억원을 넘어서며 서울 최고가인 명동이나 강남 등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크래프톤이 최근 사들인 성수동 메가박스스퀘어와 이마트 건물 매입가격은 3.3㎡당 각각 2억3352만원, 1억9000만원이다. 회사는 이곳들을 복합개발건물로 증축해 일부를 분양할 예정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성수동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온 터줏대감 가게들이 높은 임대료에 쫓겨나면 결국 성수동 상권 전체가 침체될 수 있다"며 "기존 상인들도 공생할 수 있는 임대료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