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 밴스 美 부통령 동명 자서전 원작
'러스트 벨트' 저소득층 백인의 삶 다뤄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넷플릭스를 이용하다 보면 '숨 쉴 틈 없이 콘텐츠가 몰아친다'라는 인상을 받는다. 30일 넷플릭스는 '넥스트 온 넷플릭스' 프로그램을 통해 2025년 글로벌 라인업을 대거 공개했다.
여기에는 '오징어 게임3', '기묘한 이야기5', '웬즈데이2' 등 글로벌 인기 콘텐츠와 함께 '아리스 인 보더랜드3', '블랙미러7' 등 인기 시리즈의 새 시즌도 포함됐다. 또 '일렉트릭 스테이트', '데빌메이크라이' 등 기대되는 신작 라인업도 다수 포진됐다.
심지어 넷플릭스는 '넥스트 온 넷플릭스 코리아'를 통해 2025년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의 일정이나 정보 등을 별도로 소개할 예정이다. 워낙 화제작들이 숨 쉴 틈 없이 쏟아지다 보니 트렌드를 쫓아갈 여력도 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맞이해야 한다.
이처럼 볼꺼리가 쏟아지는 넷플릭스에서 이미 지나간 작품을 다시 발굴하는 일은 "필요할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신작영화가 쏟아지는데 굳이 재개봉작을 거는 극장을 보는 심정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이 영화는 현 시점에서 다시 언급할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휴먼 드라마의 잔잔한 감동이 있으면서 가족에 대한 소중함도 일꺠워준다. 그와 동시에 현재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의 정치적 기반이 어디서 왔는지도 알려준다. 이 영화의 제목은 '힐빌리의 노래'다.
2020년 11월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된 '힐빌리의 노래'는 코로나19 팬데믹 영향 때문에 극장에서 개봉하기도 했다. 당시 넷플릭스와 메가박스 플러스엠은 '힐빌리의 노래'와 '맹크',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더 프롬', '미드나이트 스카이'를 극장용 영화로 배급했다. 이 가운데 '힐빌리의 노래'는 비교적 주목받지 못한 영화였다. 무거운 분위기의 휴먼 드라마인 만큼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힐빌리의 노래'는 2016년 동명의 자서전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을 쓴 저자 J.D. 밴스는 1984년 미국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에서 태어나 예일대를 졸업한 실리콘밸리 사업가다. 그는 2022년 공화당 후보로 연방상원의원이 됐으며 올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부통령을 맡게 됐다. 그는 리차드 닉슨에 이어 미국 역사상 최연소 부통령 3위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힐빌리의 노래'는 밴스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인구 5만명도 안되는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밴스는 어릴 때 부모가 이혼했고 어머니의 가정폭력과 마약중독 등을 겪으며 외할머니의 손에 자랐다. 밴스는 어려운 환경에서 성실하고 바르게 자라 예일대를 진학하기에 이른다.
영화는 표면적으로 밴스가 어머니와 외할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그러나 밴스가 자란 미들타운은 현재 트럼프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동네다. 미국에서 미시건과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를 가로지르는 지역을 러스트 벨트라고 부른다. 한때 중공업 중심으로 성장한 지역이지만, 빅테크와 금융업으로 산업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현재는 몰락한 공업지대가 됐다.
이 지역에 살던 백인 노동자들은 대도시의 성장 이후 '가난한 백인'이 돼버렸으며 정치적으로도 소외된 위치에 놓였다. 특히 미국 민주당이 이민자를 적극 수용하고 다인종, 다문화 중심의 진보적 정책을 내놓으면서 백인 노동자들의 소외감은 더욱 커졌다.
트럼프는 이들을 파고든 구호를 내놓으며 인기를 끌었다. 제조업을 다시 일으키고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해 백인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더 확보하겠다고 나섰다. 트럼프가 외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는 그들의 소외감을 제대로 달래주는 말이었다.
'힐빌리의 노래'는 이 같은 정치구호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트럼프의 그림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러스트 벨트의 주민들이 어떻게 살았고 거기서 태어난 밴스가 어떤 꿈을 가지며 성장했는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는 트럼프 시대의 이상향을 제대로 보여준다. 마치 "너희도 밴스처럼 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정치적 배경을 제외하더라도 '힐빌리의 노래'는 꽤 매력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잔잔하면서 진한 여운을 주는 이야기는 여느 문학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실제로 빌 게이츠나 김훈 작가 역시 영화의 원작 도서를 추천하기도 했다.
여기에 외할머니 보니 밴스를 연기한 글렌 클로즈는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리며 '미나리'의 윤여정과 경쟁하기도 했다. 또 어머니 베브 밴스를 연기한 에이미 아담스 역시 탁월한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를 연출한 론 하워드는 '뷰티풀 마인드'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다빈치 코드', '아폴로13', '하트 오브 더 씨' 등을 만든 할리우드 거장 감독이다.
넷플릭스에 신작 영화와 드라마들이 올해도 우수수 쏟아질 예정이지만, 조금 여유가 된다면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 하나 보는 것을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