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을 가능으로···'한강의 기적' 주역
[서울파이낸스 윤은식 기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타계로 한국 산업화를 이끌었던 재벌총수 1세대의 시대가 저물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고 구인회 LG그룹 회장,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에 이어 지난 8일 김 전 회장의 별세로 '한강의 기적'을 주도한 '재계 1세대' 시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재계 1세대는 우리나라 경제의 초석이자 산증인이다. 1970년 전후 고도성장기 때 조선, 건설, 중공업 등 주요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을 창업해 고도성장의 신화를 만들었다. 유일하게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만이 재계 1세대로 남아있게 됐다.
무모한 도전 그러나 무에서 유를 창조한 재계 1세대는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으로 대변된다. 이들의 기업가 정신이 없었다면 오늘날 '경제대국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이병철 삼성 회장은 섬유, 가전, 반도체 등 경박단소한 분야에서 한국 최고의 기업 삼성을 일궈냈다. 이병철 회장은 1983년 3월 이른바 '2·8 도쿄 선언'으로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며 반도체 불모지 국가에서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국가로 만든 주역이다. 그의 '사업보국, 인재경영'이란 경영이념은 여전히 우리 산업사의 압축표현이기도 하다.
정주영 회장은 건설을 시작으로 자동차, 중공업 등 한국의 중후장대 산업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88서울올림픽 유치, 500마리 소 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가는 등 한국 현대사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소양강댐, 경부고속도로, 중동 건설시장 개척, 서산간척지 공사 등도 그가 세운 대표적인 역사이기도 하다.
구인회 회장은 1931년 진주에서 '구인회포목상점'이란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해 1945년 LG그룹의 모체인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했다. 비누, 화장품, 치약 등 생필품을 만들며 국내 화확공업의 기틀을 닦았다. 특히 럭키치약은 출시 3년 만에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미국의 콜게이트치약을 물리치고 국내시장을 석권했다.
1958년에는 금성사를 세워 라디오, 선풍기, 세탁기, 냉장고 등 국내 최초로 전자제품을 만들었다. 그해 11월 부품 국산화율 60%인 국산 라디오 1호 A-501을 출시했다. 당시 가전제품은 ‘금성’이란 명성을 얻기도 했다. 1964년에는 국내 최초 합성세제 '하이타이'를 출시해 세탁기 보급과 함께 국내 '의(依)생활'에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세계화'를 주창한 최종현 회장은 맏형인 최종건 회장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형이 세운 직물 업체 선경직물을 물려받는다. 스스로 창업 1.5세대라고 불렀지만 1980년대 대한석유공사(옛 유공, 현재 SK이노베이션)와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하며 지금의 SK를 재계 3위로 키웠다.
그의 인간중심 경영철학은 장학사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장학퀴즈'와 사재 22여억원을 털어 설립한 한국고등교육재단 설립이다. 특히 장학퀴즈는 그룹을 대외적으로 부각시킨 사업이기도 했다. 장학퀴즈가 해를 거듭할수록 학생과 학부모, 일반인들에게 인기가 높아지면서 기업이미지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아들 최태원 회장도 선대 회장의 인간중심 경영철학을 이어받아 기업의 헌법인 정관을 개정해 기업의 핵심가치를 '이윤추구'에서 '행복추구'로 바꿨다.
'세계 경영'을 외친 김우중 회장은 과감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전자, 자동차, 조선 등 사업을 일구며 대우그룹을 재계 2위로 성장시켰다. 1999년 부도 직전까지 김 회장은 샐러리맨의 신화로 통했다. 기업인 노벨상으로 불리는 국제기업인상을 아시아 기업인 최초로 받았다. 그의 행보에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최초의 대북협력사업인 '민족산업총회사'를 북한 남포에 설립, 국내 최대의 지상 23층 규모의 사옥 건립, 한국 기업 최초로 호주 시드니에 해외 지사를 설립했다.
한편 재계는 현재 오너 3·4세 시대로 세대교체가 한창이다. 불굴의 의지와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를 이끈 재계 1세대와는 달리 이들 3·4세대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업환경과 대내와 불확실한 경영환경 등 위기돌파의 숙제를 안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재계 1세대들의 기업가 정신을 오너 3·4세들이 이어받아 지금 경제 위기를 상황을 극복해 새로운 경제 신화를 이어가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