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휴 없인 생활금융 서비스 제공 어려워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시중은행들이 저마다 '생활금융 플랫폼'을 외치고 있다. 기존 금융 서비스에서 나아가 일생생활을 파고드는 서비스를 더한 필수 앱(애플리케이션)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구상이다.
과거 경쟁자를 배척하는 업계 분위기도 사뭇 달라졌다. 빅테크(대형 IT기업)를 밀어내기보다 협업을 통해 동반 성장하는 협쟁(Coopetition) 전략으로 선회한 것이다. 광범위한 데이터 등을 보유한 빅테크와 손잡는다면 생활금융 플랫폼으로의 변신을 가속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최근 네이버와 금융, IT를 융합한 디지털 혁신 사업 추진을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을 맺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위한 금융과 플랫폼 서비스를 연계한 콘텐츠 개발부터 B2B2C(기업간·소비자간 거래) 대상 금융과 플랫폼 융합 서비스 패키지 공동 개발 등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우리은행이 디지털 경쟁력 강화를 위해 네이버와의 협업을 택한 것은 올해 들어서만 두 번째다. 앞서 우리은행은 네이버의 금융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과 손잡고 디지털 융복합 상품 개발과 플랫폼 금융서비스 제공 등에 적극 협력하기로 한 바 있다.
연내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사업자 대상의 신용대출 상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충분한 대출 상환능력에도 불구하고 담보나 오프라인 매장이 없어 은행권 대출이 어려웠던 온라인 사업자를 위한 전용 상품을 만들어, 낮은 금리의 대출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협력체계를 다져 놓으면 신규 사업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나갈 수 있다"면서 "각각 금융과 IT·포털서비스 분야에서 축적된 노하우를 융합해 차별화된 혁신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도 빅테크사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달엔 이용자가 네이버 부동산에서 전세 매물 검색부터 신한은행의 대출까지 이어주는 기능을 도입하기로 했다. 개인별 대출 한도와 금리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밖에도 하나은행 등 10여곳의 시중은행들이 카카오페이나 토스와 협업해 대출 비교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이처럼 은행권이 '적과의 동침'을 택한 것은 플랫폼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빅테크와의 제휴를 최소화하는 분위기였다면, 최근엔 때로는 협력하고 다시금 경쟁하는 협쟁이 필수로 자리잡은 분위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빅테크가 위협적인 경쟁자라는 점은 변함없지만, 무조건 적대시한다면 그만큼 발전도 늦어지는 것"이라며 "네이버를 비롯한 빅테크들은 검색이나 쇼핑, 문화 등 광범위한 데이터를 보유한 데다 IT나 포털 분야 노하우를 활용해야 신규 사업을 더 빠르게 발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시중은행들이 생활금융 플랫폼을 모바일뱅킹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만큼, 본격적인 제휴 움직임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과 빅테크 사이의 장벽이 점차 사라지는 셈이다. 이종 업종과도 마찬가지다. 차별화된 생활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다양한 제휴사와의 합종연횡 역시 필수다.
실제 하나은행은 특화된 자산관리 서비스를 넷마블 게임에 접목시켜 MZ세대를 위한 신규 자산관리 서비스를 내놓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이달 넷마블과 '디지털 혁신 서비스 발굴을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신한은행의 경우 GS리테일과 온·오프라인 채널 융합 혁신 금융을 추진하기로 했다. MZ세대에 특화된 전자 금융 서비스 개발을 비롯해 온·오프라인 채널 융합을 통한 미래형 혁신 점포 구축에 나선다.
업계 관계자는 "은행은 규제 제약 때문에 생활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앞으로도 은행들은 다양한 제휴사 확보를 통해 고객과의 접점을 늘릴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하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