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변경에 높은 본업 의존도 '발목'···추가 하락 불가피
작년 후순위채 발행만 1.8조···"올해 건전성 관리 최우선"
[서울파이낸스 신민호 기자] "자본 관리에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본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절실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현대해상의 조용일·이성재 대표가 올해 신년사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지난해 3분기에만 1조원을 돌파하는 호실적을 기록했음에도, 금리 하락 및 회계제도 조정 등의 영향으로 재무 건전성 관리가 최우선적으로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이에 현대해상은 지난해에만 2조원에 육박하는 후순위채(자본성증권)를 발행해 자본을 확충하는 등 정면 돌파에 나섰다. 다만 올해에도 지급여력비율의 추가 하락이 불가피한 만큼, 재무건전성 관리를 위한 현대해상의 고군분투가 이어질 전망이다.
9일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3분기 말 현대해상의 지급여력비율은 170.14%로, 전년 동기 대비 1.96%포인트(p) 하락했다. 지급여력비율이 급락했던 작년 1분기(166.89%)와 비교하면 소폭 개선됐지만, 여전히 손보업계 하위권에 해당한다.
빅5로 묶이는 타 손보사의 경우 △삼성화재(280.57%) △DB손보(228.78%) △메리츠화재(257.01%) △KB손보(203.71%) 등으로 모두 200%를 상회한다.
현대해상은 작년 한해 역대급 호실적을 기록했다. 3분기 누적 순이익은 전년 대비 33.1% 증가한 1조464억원을 기록, 이는 5개 손보사 중 가장 높은 성장률로 2위인 DB손보(23.7%)를 크게 웃돈다.
통상 실적과 재무건전성은 비례하는 경향이 강하다. 순익이 증가할수록 잉여금 등 가용자본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실제 호실적의 영향으로 현대해상의 이익잉여금(7조4332억원)은 3분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14.6%나 증가했다. 자본금과 자본잉여금의 변동은 없지만, 6월 초 5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발행까지 겹쳤다.
그럼에도 현대해상의 총자본(5조4303억원)은 일년새 18.5%나 감소한다. 보험부채 할인율 산정기준이 단계적으로 강화되는 등의 여파에 작년 3분기 1200억원의 이익을 기록했던 기타포괄손익이 올해 3분기 기준 1조5715억원 손실 전환됐기 때문이다.
해약환급금준비금도 4조4315억원으로 일년새 23.0%(8276억원)나 늘었다. 해약준비환급금은 지난해 보험부채를 시가 평가하는 신회계제도(IFRS17)가 도입되면서 생겨난 제도로, 보험부채가 해약환급금(원가 부채 기준)보다 적은 경우 적립하도록 만든 금액이다.
설상가상 잔여보장부채도 3분기 말 기준 29조766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5%(5조8551억원)이나 급증했다. 분자인 가용자본이 감소한 반면 분모인 요구자본은 오히려 늘어나면서, 잉여금 증가 및 자본증권 발행이란 호재에도 지급여력비율이 둔화될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현대해상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배경으로는 타사 대비 높은 본업 의존도가 꼽힌다. 단적으로 3분기 말 기준 자산에서 보험계약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74.1%로, 상위사(삼성 61.6%, DB 62.3%, 메리츠 55.9%)를 크게 상회한다. 영업이익에서 보험손익이 차지하는 비중도 77.7%로 다른 상위사(삼성 68.4%, DB 70.2%, 메리츠 70.1%)를 웃돈다.
보험 부채를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영향으로 상대적 수혜를 입었지만, 보험부채 할인율을 현실화하는 등의 계리적 가정 변경 여파에 크게 노출됐다는 설명이다.
김예은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포트폴리오상 장기보험 비중이 높아, 할인율에 대한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며 "우수한 수익성에도 할인율 인하 효과 등에 지급여력금액(가용자본) 증가가 제한적이었고, 보험위험 및 금리위험액이 늘면서 지급여력기준금액(요구자본)도 크게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 속 현대해상의 선택은 가용자본 확충이었다. 현대해상은 작년 4분기에만 두차례에 걸쳐 1조3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하는 강수를 둔다. 작년 한해 현대해상이 발행한 자본성 증권 규모는 1조8000억원으로, 똑같이 지급여력비율 문제를 겪고 있는 한화생명(1조9000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수준이다.
4분기 발행한 후순위채가 자본으로 인정될 경우 단순계산으로 분자인 지급여력금액이 13조8887억원으로 증가, 지급여력비율이 187.7%까지 상승하게 된다. 할인율 인하나 무·저해지 가정 변경 등 요구자본을 늘릴 요인들이 반영되면서 실제 상승분은 축소되겠만, 대체로 180%에 근접하는 선까진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재무건전성과의 싸움은 올해에도 현재진행형이다. 작년 결산부터 금융당국이 제시한 계리적 가정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면서 지급여력비율 하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해상의 포트폴리오 특성상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조정의 영향이 타사 대비 클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업권에서는 제도 변경 등의 영향으로 현대해상의 CSM이 약 6000억~7000억원 가량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대로 실손보험 개편 등의 반사이익이 가장 클 것이란 분석도 나오지만, 이와 별개로 지급여력비율의 강화는 화두일 수밖에 없다.
본격적인 금리인하기 진입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부담요인이다. 통상 보험사는 자산 대비 부채 만기가 길어, 금리가 내려갈수록 부채가 확대돼 지급여력비율이 낮아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특히 현대해상은 장기보험 비중이 높은 만큼 부채 듀레이션이 길어, 금리하락 여파가 상대적으로 클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지급여력비율을 어느 정도 이상 유지하겠다는 지침은 없지만, 재무건전성 강화가 핵심 화두는 맞다"며 "현재 모든 방안을 검토 중이며, 후순위채 추가 발행 말고도 재보험 등도 고려하고 있다. 또한 장기채 중심으로 교체 매매를 진행해, 자산 듀레이션도 확대할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