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국 혼란 속 은행권 역대급 '돈잔치'
[기자수첩] 정국 혼란 속 은행권 역대급 '돈잔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새해부터 은행 총파업 이슈로 시끌시끌하다. 은행 노조가 총파업을 진행하는 주된 목적은 '성과급·임금 인상'이다.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낸 만큼 그에 따른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다.

KB국민은행 노조가 지난 14일 총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투표에 참여한 노조원 9702명(투표율 88.22%) 가운데 95.59%인 9274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노조는 현재 사측과의 임금·단체협약(임단협)에서 △성과급 300%(통상임금 기준)+1000만원 지급 △임금인상률 2.8% △경조금 인상 △의료비 지원제도 개선 △임금피크제도 개선 △신규 채용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는데, 해당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이다.

IBK기업은행 노조도 지난달 27일 차별임금 폐지, 체불 수당 지급 등을 요구하며 설립 52년 만에 처음으로 총파업에 나섰다. 노조는 △기본급 250% 특별성과급 지급 △1인당 600만원 체불된 시간외수당 지급 △우리사주 100만원 증액 등을 요구하고 있는데, 관철되지 않을 시 2·3차 총파업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두 은행 외 다른 주요 은행들은 이미 성과급·임금 인상을 내용으로 하는 임단협을 타결했다. 임금인상률은 일반직 기준 2.8%로 올라 전년(2.0%)보다 0.8%p(포인트) 상승했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올해 성과급으로 기본급의 280%를 책정하는 한편, 현금성 포인트를 전년보다 늘렸다. 농협은행은 통상임금 200%에 현금 300만원을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현금성 포인트를 2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확대했다.

은행권이 올해 성과급과 임금 규모를 확대하고 나선 것은 지난해 최고 실적을 갈아치웠기 때문이다. 주요 은행들은 지난해 3분기까지 △신한은행 3조1028억원 △하나은행 2조7808억원 △KB국민은행 2조6179억원 △우리은행 2조5244억원 △IBK기업은행 1조9946억원 △NH농협은행 1조6561억원 등 조단위 순이익을 올렸다. 이 중 신한·하나·우리·농협·기업은행 등이 3분기 누적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시현했다.

좋은 실적을 낸 기업의 직원들이 성과급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언뜻 합리적으로 보인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 좋은 성과를 냈으니 그에 따른 보상을 해 근로 의욕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 토를 달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은행의 사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성과가 온전히 직원들의 노력으로만 이뤄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지난해 최고 실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이자장사'를 잘했기 때문이다. 즉, 확대된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를 기반으로 대출 고객들에게 이자를 많이 거둬들였다는 뜻이다.

지난해 기준금리가 내렸음에도 은행들은 가계대출 관리를 이유로 대출금리를 낮추지 않았다. 오히려 연말까지 대출총량 관리를 위해 가산금리를 앞다퉈 올리기도 했다. 반면, 예금금리는 시장금리 하락을 반영해 빠르게 낮췄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은행권 신규취급액 기준 예대금리차는 1.41%p로 2023년 8월(1.45%p) 이후 1년3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집계됐다. 같은 달 기준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예대금리차(정책서민금융 제외)는 0.98~1.27%p로 연중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대거 불어난 은행 대출자산도 매년 역대급 실적을 경신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당시 가계와 소상공인의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은행들이 대출을 대규모로 풀었는데, 그때 나갔던 대출이 현재의 이익 기반이 되고 있다.

은행권의 '돈잔치' 논란은 매년 반복되는 이슈지만 올해는 유독 씁쓸하다. 12·3 계엄사태 이후 정국이 혼란해진 틈을 타 역대급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모양새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돈잔치를 두고 대통령을 필두로 정부의 비판적인 메시지가 계속됐고, 은행들도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성과급·임금인상률을 전년보다 줄였다.

은행권은 이자장사로 벌어들인 돈을 임직원 돈잔치에 활용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총파업을 볼모로 성과급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것 또한 금융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불가피하다. 금융소비자로부터 번 돈을, '불편함'으로 되갚아주는 형국이다. 은행권은 무리한 성과급 요구가 집단이기주의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 시간 주요 뉴스
저탄소/기후변화
전국/지역경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