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다주택자·갭투자 대출 속속 중단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정부가 토지거래허가제도를 놓고 갈지자 행보를 보이면서 은행권도 덩달아 가계대출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해 들어 재개했던 대출을 한 달 만에 다시 중단해야 하는 등 창구 혼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19일 발표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에 따라 서울·수도권 지역의 가계대출 취급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은행들도 추가 대출 제한 계획을 내놓거나 후속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서울·수도권 지역에서 다주택자가 추가 주택구입을 목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빌리거나 갭투자(전세 낀 주택 매매)로 활용되는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을 받는 경우가 규제 대상이다.
관련해 정부는 다주택자·갭투자자 관련 가계대출을 금융권이 자율규제를 바탕으로 보다 엄격히 관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서울 주요 지역에 대한 주담대 취급 점검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정부 정책에 발 맞춰 은행들도 부랴부랴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NH농협은행은 오는 21일부터 서울 지역 내 조건부 전세대출 취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임대인의 소유권 이전 △선순위 근저당 감액·말소 △신탁 등기 말소 등의 조건과 동시에 대출을 취급하는 경우가 해당되는데, 갭투자를 막겠다는 취지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9월 해당 대출 취급을 중단했다가 올 1월 재개했으나 두 달 만에 다시 제한하게 됐다.
SC제일은행도 이달 26일부터 2주택 이상 보유 차주의 생활안정자금 대출 신청을 제한한다. 임차반환자금, 타 은행 대환대출, 추가 대출이 모두 제한된다. 이 은행은 지난 3일부터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하는 주택구입 목적 주담대도 내주지 않고 있다.
하나은행은 27일부터 서울 지역에 한해 '다주택자의 구입 목적 주택담보대출' 및 '조건부 전세자금대출'의 신규 취급을 중단한다. 구입 목적물이 서울시에 소재하는 1주택 이상 주택 보유자는 하나은행에서 주담대를 받을 수 없게 된다. 또 선순위말소·감액, 다주택 보유자의 처분 조건부 등 보증 목적물이 서울시에 소재하는 조건부 전세대출도 받을 수 없다.
올해 초 다주택자에 대한 수도권 주담대를 재개했던 우리은행은 해당 대출을 다시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KB국민·신한·NH농협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가계대출 급증세를 막고자 시행했던 다주택자 주담대 제한 조치를 유지하고 있다.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으로 대출영업에 변수가 생긴 은행권은 부담이 큰 상황이다. 이미 금융당국 지도 아래 연간 가계대출 목표치를 세우고 월별·분기별 수요에 맞춰 대출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단기간 내 정부 정책이 번복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하면서 대출수요 예측이 더 어려워진 것이다.
특히, 이번 사례로 토허구역을 풀면 집값이 오른다는 '학습효과' 마저 생긴터라 앞으로의 가계대출 관리가 더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앞서 정부는 6개월 뒤인 오는 9월 말 토허제 연장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는데, 만약 토허제가 해제된다면 단기간 내 주택매매를 위한 대출수요가 급격히 몰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때 당국이 보다 타이트한 가계대출 관리를 요구할 경우 은행으로선 '대출 총량규제'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다. 시장금리가 하락세로 돌아선 데다 금융당국의 '이자부담 완화' 요구가 거센 만큼 가산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대출 총량을 관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대출을 열자마자 바로 닫아야 하는 등 은행도 대출정책을 갈지자로 운영해야 하는 데 따른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지역별 대출 증가세를 모니터링하고 있으나, 규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에서 은행 창구에서 자체적으로 지역에 따라 대출을 차별해 제한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다른 은행 관계자는 "정부에서 자율적인 대출 관리를 요구했는데, 시장 상황상 가산금리를 올리는 카드는 오히려 역풍이 불 수 있기 때문에 또다른 추가 대출제한 조치를 검토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연초부터 대출영업에 '브레이크'가 걸린 상황이라 고민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