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원칙과 수수료
4대 원칙과 수수료
  • 서울금융신문사
  • 승인 2003.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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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에 20년 넘게 몸담아 온 한 취재원이 어느 날 불쑥 이런 얘기를 꺼냈다.

“옛날 내가 처음 입사하니까 연수원에서 이런 걸 가르치더라고. 금융기관 여신 운용에는 4대 원칙이 있다고…. 그 첫째가 공공성이래. 뭐니뭐니해도 국가경제에 이바지해야 된다는 거지. 그 다음이 안전성. 옛날만 해도 유흥업소나 부동산 투기 이런 데는 돈을 못빌려 줬어. 그리고 난 다음이 수익성이었어. 먹고 살아야 되니까. 마지막이 성장성이야. 여신처도 성장하고 금융기관도 성장하는, 요즘 말로 하면 윈-윈 전략이지. 근데 요즘은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한 가지만 있으면 되는 시대야. 수익성. 이젠 금융기관도 확실히 이익집단이 된 셈이지.”

이 취재원 말처럼 금융인들은 이제 스스로를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뼈를 깎아내는 구조조정을 겪으며 그런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생각은 기억에서 빨리 지울수록 이롭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전 국민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금융기관을 공공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다. 언론도 그 중 하나다.
최근 은행, 카드사 등이 수수료를 대폭 인상하자 한 신문은 이런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금융기관 또 수수료 장난’

물론 영업손실을 고객에게 전가하는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금융기관이 고객에게 ‘장난’을 치려고 수수료를 인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론이 이런 제목을 단 이면에는 여전히 금융기관을 공공기관의 잣대로 바라보려는 관성이 존재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연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송금수수료를 제외한 은행의 120여개 항목 수수료들은 대부분 원가의 50%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기업들이 피해갈 수 없는 분기 실적발표 시즌이 되면 모든 사람들은 금융기관을 주주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순익은 얼마나 냈는지, 전분기 대비 실적은 얼마나 향상됐는지가 주관심사지 그 금융기관이 얼마나 공공서비스를 잘했느냐는 절대 관심사가 아니다.

과연 김정태 행장이라고 국민들의 반전감정을 몰라서 “나같으면 전투병 파병도 고려했을 것”이라고 대놓고 얘기했을까. 기자가 듣기에 그 말은 “나는 국민은행 실적만 좋아진다면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수 있소”라는 애처로운 비명으로 들렸다.

분명 우리 사회는 금융기관에 대해 ‘공공성’과 ‘수익성’의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그리고 금융기관은 수익성을 향해 내달리면서 한편 기존 공공성도 버릴 수 없는 애매한 상황에 놓여 있다. 고객이 이중잣대를 버려야 할까, 아니면 금융기관이 계속 두 마리 토끼를 쫓아다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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